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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또 해요?

by Aphraates 2009. 4. 27.

행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만연되던 요식행위를 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많이 간소화시켰다고 하는데 그래도 뭘 하다 보면 적지 않게 나타난다.

어떤 요식행위를 보면 강자의 입장에서 서류상으로 책임회피를 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약자에 대한 서비스를 문서로 보장하여 제공하겠다는 것인지 몰라서 바쁜 세상에 시간과 경비를 들여가며 그런 걸 꼭 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보험회사 콜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새로 가입한 보험에 대하여 전화상으로 확인 서명 받는 절차라면서 비교적상세한 것들을 물었다.

몇 가지 질문에 답하다가 전에 한 것을 또 하는 것 같아서 “잠깐만요. 전에 한 것 같은데 또 해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직원이 “손님, 번거롭게 해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모두에 안내해 드렸습니다만 이것은 확인하는 절차이니 양해해주십시오” 라고 공손하게 말했다.

좀 귀찮았지만 그래도 보험계약서류를 우편으로 보낸다, 보험설계사가 방문한다, 가까운 지점으로 한 번 나와 달라 하는 것보다는 한 참 발전된 것이어서 성실하게 대답해 줬다.

그러나 끝나고 나니 지난번에 한 것인데 서류상으로 말하면 서류를 작성하고 상기 사실이 진실이라고 인감증명을 첨부하는 것과 같은 절차여서 굳이 그런 요식행위가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과 관련된 것이니 명확히 해야 하는 보험문제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확실한 방법이니까 그렇겠지만 보험 가입단계에서의 요식행위는 만만찮다.


보험에 가입할 때 계약서와 두툼한 책으로 된 약관서를 준다.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하여 보험설계사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었고 동의한다며 서명을 하는데 가입자 입장에서 보면 고객보다는 보험사 위주의 요식행위다.

나는 보험을 많이 들어봤고 아직도 유효한 보험들이 여러 개 있지만 약관 내용을 알거나 관심을 가져 본 것은 거의 없다.

한 달에 얼마씩 불입이 되고, 보장내용이 뭐고, 언제가 만기이며 금액이 얼마 정도라는 설명을 대충 들었지만 그냥 고개만 끄떡이고 사인했지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알지 못 한다.

보험 때문에 문제를 안 겪어봐서 그런지 모르지만 약관을 자세히 알 필요도 없다.

대형 보험사에서 전문가들이 만들고, 관계기관에서 전문가들이 면밀한 검토를 하여 승인해준 것이니 믿어야지 그런 것까지 일일이 확인을 해야 한다면 세상 복잡하여 살기 어렵다.


전문용어로 깨알같이 적혀있는 약관 내용을 숙독하여 파악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렇지만 믿고서 다 읽었고 그 내용에 동의한다고 흔쾌하게 사인한다.

그게 탈일 때가 있다.

문제가 야기되고 불이익이 발생하면 그 것은 기분 좋게 휘갈겨 사인한 약관을 근거로 고스란히 가입자의 몫이 된다.

사고가 났는데도 보험금 한 푼도 못 받고 나서 “보험금이 얼마가 나오는 줄 알았는데 왜 그러느냐, 사고는 귀책여부를 안 따지고 전 사고가 보험 대상인줄 알았는데 무슨 소리 하는 거냐?” 하면서 불만을 가져봤자 그 약관을 들이대며 몇 조 몇 항에 그게 명시되어 있다고 빨간 줄을 쳐 주면 아야 소리 한 마디 못 하고 보험사 뜻대로 된다.

물론 그 것은 보험회사가 일부러 보험금을 안주려고 불 탈법을 자행한 것이 아니라 가입자가 자세히 모르고 막연하게 믿었던 것이 불찰이다.


우리 주변에 보면 줄어야 할 요식행위가 여전하다.

병원의 수술 서약서, 고용보험의 취직노력 확인서. 주민 설명회와 공청회, 의견수렴과 설문조사, 입찰과 현장설명회, 인사추천과 공모제......, 등등 무수히 많다.

나는 요식행위라 생각하나 상대측에서는 왜 필요한지를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할 지 모른다.

그렇지만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어떤 조건의 무슨 내용의 요식행위이던 간에 고객 입장에서는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을 굳이 확약 받는 것은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는 것이나 불공정 거래에 속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요식행위는 획기적으로 줄였으면 좋겠다.

인간의 4대 중대사라는 결혼, 직업, 죽음, 종교에서도 요식행위가 간소화 되고 있는 실정인데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요식행위는 늘어나기 마련이라고 하는 설명은 설득력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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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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