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유지 서약서를 여러 번 썼다.
강한 인상이 남는 것도 몇 건 있다.
1)최전방 임진강 DMZ 내 GP를 나와 감악산 자락 아래 보축교육대에서 전역자 보안 교육을 받을 때였다.
2)1990년대 초 체제가 붕괴되어 출장은 가지만 여전히 적성국가로 분류되던 중국과 소련으로 출장 갈 때였다.
3)2012년 정년 퇴임을 할 때였다.
서약서 내용은 간단하다.
형식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무시무시한 것이다.
조금이라도 비밀누설을 하여 문제가 되면 여지없이 감옥에 가던가 손해 배상을 해야 하는 올무같은 것이다.
이제는 세월이 많이 가 그런 구속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볼 수 있을텐데 아직도 통제와 명령에 길들여진 속성이 남아 있어 지금도 비밀과 보안을 잘 지키고 있는 편이다.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시대가 변했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말과 함께 보안의 위력이 예전같지 않은 것이다.
예전에 보안을 악용한 것인지, 지금 보안 의식이 없는 것인지 모르지만 보안은 널널하다.
관련 법은 거의 사문화되다시피 되고, 그래도 규정이 그러니 보안 각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하면 떠밀려서 하긴 하지만 휴지통으로 직행되다시피 한다.
군에서 일종의 민원 신문고인 소원수리를 쓰면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고 하는 것은 물론이고, 복무나 재직시에 취득한 중요 기밀에 대해서 무덤까지 갖고가야 한다는 생각은 유지되고 있지만 그거는 구태의 진부한 유산으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 한다.
금요일날 퇴근을 하면서 휴지통을 비우고, 전원 코드를 빼고, 문단속을 하고 나오느라니 보안과 비밀이 떠올랐다.
이제는 시대 흐름에 따라 그런 것은 안 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또한 세상이 어찌 변하더라도 평생 살아온 틀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고, 구태여 수고하고 번민하면서까지 바끌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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