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대학 동문회에 다녀왔다.
퇴직한 OB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초청이나 참석을 안 하는 데 이번에는 현 민(閔) 회장님이 연말 부로 리프레쉬(Refresh, 재교육/숙려기간) 에 들어가기 전에 특별히 만든 자리 같았다.
코로나 때문에 삼 년 여 만에 갖는 모임이라고 했다.
아기자기하고 정겨운 만남이었다.
아울러 고맙고 즐거운 자리였다.
참석자들 분포도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
동창회도 우리의 인구변화와 산업개편 흐름을 추종하는 것 같았다.
OB는 늘고 YB는 줄어드는 현실을 증명이라도 해주는 듯했다.
소수 인원의 OB가 특별 손님으로 초대되던 예년과는 달리 이번에는 상당수가 참석하여 YB 숫자에 근접한 것 같았다.
만찬 전에 간단한 회의 진행이 있었다.
회장님이 개회 인사에 이어 참석 선배들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퇴직 연도별로 따지면 그전에도 대선배님들이 계시지만 오늘은 신(申) 선배님을 가장 윗기 선배님을 초청했는데 사정상 못 오셨다면서 그다음으로 OOO 선배님이 참석해주셨다는 소개였다.
그러니까 다른 대 선배님들도 많이 계시지만 이번에는 10년 전에 퇴직한 미당 선생이 가장 빠른 기수의 선배라서 맨 처음 소개가 된 것이었다.
듣는 미당 선생 당황했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얼떨결에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긴 했으나 믿기질 않았다.
모임에서 가장 먼저 소개되다니 어떤 모임이나 행사에서도 일찍이 경험한 바가 없는 일이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는 동년배 OB 들게 서도 우리가 벌써 그렇게 됐나 하면서 수줍은 너털웃음을 지셨다.
세월이 그렇다.
같은 연배들끼리는 나이 들었다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한다.
옛날 펄펄 날아다닐 때 생각만 하고 이렇게 밤이슬 맞으며 휘두르고 다니다가는 쌍코피 흘릴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고 의기투합하지만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내내 그 모양새다.
우리끼리니까 인생은 지금부터라고 객기를 부리며 쓴웃음을 짓지만 어린 세들이 아니라 청장년 세대가 볼 때도 꼬부랑 노인들인데 웃긴다며 야릇한 웃음을 지을 것이라고 저물어가는 자신들을 인정하면서도 막상 닥치면 그를 내색조차도 안 한다.
종료 시간을 좀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늦게까지 있으며 후배들한테 불편할 거라면서 슬며시 빠져나왔다.
모처럼 만인데 그냥 헤어지기는 서운했다.
서운한 게 있으면 풀어야 한다.
용띠 일행 셋이 예전에 깃발을 날리던 만년동에서 입가심으로 먹태를 안주 삼아 2차 맥주 한 잔 더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현업 이야기가 나왔다.
언제까지 얼마나 더 일할지 모르지만 성심성의를 다 해야겠다고 하였더니 무슨 소리냐면서 아직 한참 때라고 하여 함께 웃었다.
모임에서 연장자가 맨 먼저 소개되는 것은 관례다.
소개받으면 감사를 표하고 현직에 있을 때가 좋을 때이니 열심히 일하고 즐겁게 살라고 덕담을 건네는 게 보통이다.
고장 난 시계처럼 돌아가는 과정이니 소스라치게 놀랄 일은 아니다.
그래도 싶다.
남의 일만 같던 그 일이 왜 나한테 닥친 것이냐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모두 다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것을 야속한 세월이라고 노래 불러봐야 아무 소용없다면서 들어도 들어도 공감이 가는 노래를 듣는 것으로 아침을 열며 주말의 시간을 충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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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국내여행안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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