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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줄줄, 콸콸

by Aphraates 2025. 6. 29.

날씨에 민감한 세월을 살아왔다.

YB(현역)때나 OB(은퇴)해서나 마찬가지다.

혹서기와 혹한기에 그랬지만 특히 비바람과 눈보라에 민감했다.

나막신 장수와 우산 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 심정은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체질상 그런 것도 아니다.

후천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력 설비의 계획, 건설, 유지 관리, 운용 업무에 종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눈을 뜨나 감으나 날씨가 어떤지부터 살피게 된 것이다.

날씨를 먼저 알아보는 게 하나의 일과였다.

습관처럼 됐다.

 

날씨는 경이로움이었다.

늘 조심하고 유의했다.

그런데도 궤도를 이탈하여 보조를 못 맞춘 경우도 상당했다.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에 곤욕을 치른 때가 적지 않았다.

그렇게 관심을 두고 신경을 쓰니 좀 봐주겠다고 배려해 주는 자연이 아니었다.

아닌 밤에 홍두깨처럼 훅 들어온다.

자연과 인간의 역학 구조가 그러니 어쩌겠는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늘 유비무환의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 것은 사람이다.

 

날씨에 민감한 것이 한 잔 술에 허를 찔렸다.

어제 성당 역대 회장단 모임을 기분 좋게 마치고 와서는 곧바로 떨어졌다.

그런데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어디서 물이 떨어지고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일기예보 상으로는 비가 안 잡혔었다.

이상하다 싶어 시계를 보니 이른 새벽이었고, 베란다를 통해 밖을 보니 비가 오는 것도 아니었다.

주방이나 화장실 수도꼭지를 덜 닫았는지 살펴보려고 일어서다가 깜짝 놀랐다.

거실 바닥이 흥건했다.

부분적으로는 발등까지 올라오기도 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데보라한테 빨리 일어나라 하고는 물이 샐만한 곳을 훑어보니 안 보였다.

대신 천장과 벽 여기저기서 물이 줄줄 콸콸 흘러내렸다.

얼른 기관실(야간 관리사무소 당직실)로 전화하고는 물을 퍼낼 새도 없이 이불 여러 채를 방, 거실, 주방에 깔았다.

누전차단기 작동은 안 했지만 혹시 몰라 전기 제품은 일절 안 만졌다.

위층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

바로 7층으로 올라가 문을 두드렸더니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전에도 누수가 발생하여 소통한 적이 있어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

집주인한테 전화했더니 대구에 있다면서 바로 올라오겠다고 하셨다.

 

기관실에서 직원이 나왔다.

일단 입구 수도 밸브는 잠갔다면서 7층 집주인이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줬으니 함께 들어가 보자고 하여 문을 열었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콸콸 정도가 아니라 한강이었다.

둘이 함께 대충 거실의 물을 퍼내고 세탁기가 있는 베란다에 가봤다.

냉수 공급 호스가 빠져 거기서 물이 새고, 리모델링하면서 개선한다고 한 풍신인지 배수구를 꽉 틀어막아 놔 물이 집안에 가득 차서 밑으로 흘러내린 것이었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간다는 자연 이치를 간과하다 대형 인적 실수로 유발한 것이었다.

아니, 알만한 사람들이 저 따위로 리모델링을 해 놓다니 무식하면 용감한 것이자 전문가의 수치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바로 아래층인 우리 집만이 그런 게 아니었다.

5층 집주인이 헐레벌떡 올라와 무슨 공사 하시느냐고 물었다.

그게 아니라 사정이 이렇게 됐다면서 한강은 아니고 중랑천 정도는 되는 우리 집을 보여주며 주인과 관리사무소에 다 연락이 됐으니 댁은 댁대로 임시 조치를 하시라 했더니 혀를 차면서 내려갔다.

 

아침 나절에 윗집 주인 내외가 오셨다.

한번 보시라고 문을 열었더니 미안하다면서 보험에 가입되었으니 월요일일 접수 처리하여 배상해 주겠다고 하셨다.

도배와 단풍나무 장판과 방바닥은 그리고, 피시와 복합기는 다른 것으로 바꾸면 되겠지만 내 인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엄청난 자료가 손상됐다면 큰일이라고 했더니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하셨다.

 

우리도 미안하다.

정신적인 것 빼고 물질적인 손해가 장난이 아니다.

우리는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인간적이고 도의적으로 좀 그렇다.

복구하려면 현재 나타난 것만 해도 천만 원 정도는 넉히 들어갈 텐데 이웃 간에 그럴 수 있느냐며 공동 부담하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영 거시기한 건이 하나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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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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