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장사를 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중고등학교 사춘기 시절이었다.
그건 책방이었다.
책방은 물론이고 차분하게 책방을 지키는 주인도 좋아 보였다.
그런데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상을 실현하기에는 현실이 역부족이었다.
책방을 열거나 책방에 취직할 처지가 아니었다.
또한 부잣집 자식으로 태어났으면 개인 취미 생활이나 공공의 이익에 주안점을 둘 수 있었을지 모르나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장사를 한다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와는 좀 거리가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나 구멍가게 같은 책방은 돈 되는 장사가 아니었다.
책을 좋아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좋았다.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열심히 하여 학문에 대업을 남긴 것도 아니고, 나는 책을 이만큼 소장하고 있다며 자랑한 것도 아닌데 끌리는 책을 사는 것이 즐거웠다.
그래도 꿩 대신 닭은 됐다.
책방은 못 했어도 책은 웬만큼 샀다.
경제적인 여유를 따지지 않고 기회가 될 때마다 책을 한두 권씩 샀는데 어떤 종류의 책이든 거의 버리지 않고 대전 향촌 집 서재에 보관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소년이여 꿈을 가져라”가 아니라 “노년이여 꿈을 접어라”다.
책 장사도, 책에 대한 애착도 시들해졌다.
출장이나 여행할 때마다 사 들고 들어오던 책을 안 산지도 한참 됐다.
sns를 통하여 책 이상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구태여 번거롭게 책을 살 필요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맘이 무디어진 것이다.
발달하는 세상과는 달리 나이에 따라 퇴보를 하는 것이다.
나는 아니라 외치고 싶지만 그를 거역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부산 보수동에 헌책방거리가 있는가 보다.
한 때는 수십 개의 헌책방이 성업 중이어서 알만한 사람들은 아름아름 찾곤 했다는데 찾곤 했다는데 지금은 몇 군데 안 남았단다.
그마저도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단다.
전라고 지리산 자락 화엄사 자락의 구례 출신인 69세의 헌책방주인이 20대 후반부터 40년 이상 운영하던 헌책방을 문을 닫고 고향으로 가려고 한다는 TV 프로가 눈물겨웠다.
성실하고 담백해 보이는 책방 주인의 나이와 처한 입장이 미당 선생과 비슷한 것 같았다.
희로애락으로 점철된 인생을 서서히 정리하는 듯한 모습에서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맘에 더 와 닿았다.
마침 청양의 박(朴) 형이 1980년대 중후반 현직 시절의 사진을 올려 그때는 그랬었지 하면서도 가슴이 뭉클했다.
참으로 소중하고 고마운 자료다.
꿈은 이루어진다.
맞는 말이다.
꿈은 접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
지금까지 건장한 것만으로도 책방의 꿈은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으니 이제는 미련을 둘 것이 아니다.
시설이 좋고 책이 잘 팔리는 대형 서점은 몰라도 작은 집 하나 구하여 작은 책방을 하나 내어 책 한 권이 팔리든 안 팔리든 동네 복덕방처럼 열어 놓고 꾸벅꾸벅 졸면서 운영해 보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너무 늦었다.
하고 싶을 때는 그럴 여력이 없어서 못 하고, 할 수 있을 때는 몸과 맘이 쇠잔해져 못 한다는 것이 서럽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사는 게 다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리 사는 것을 누굴 원망하겠는가.
반세기도 넘었다.
공주(公州) 중학동 공주 중고등학교에서 중동 차부 사이 큰길가에 헌책방이 몇 개 있었다.
공주를 오갈 때 눈여겨보진 않았으니 지금 추세대로라면 그 책방들은 벌써 없어졌을 것이다.
책가방을 들고 거기를 함께 드나들던 까까머리 초중학교 동기동창 동무 영식이는 서초동 서울 교대 앞에서 책방을 열어 수십 년째 경영하고 있다.
왜 그 일을 하게 되었는지 영식이도 의아하게 생각할 예기치 않은 운명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대학생들의 비대면 수업으로 겪고 있는 어려움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은 한두 집이나 남아 있나......,
대전 중앙시장 입구 중앙 극장 앞에 죽 늘어선 헌책방 노점상 앞에서 기웃거리며 책을 훑어보던 그리고, 돈이 좀 있으면 점찍어놨던 책을 사 들고 하숙집으로 향하던 자신이 떠오르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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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