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와셔 하나

Aphraates 2020. 10. 23. 04:33

내일 반입되는 외국산 자재 처리 과정을 체크하고 수신 메일을 확인하고 있었다.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올 사람이 없는데 이상했다.

누군가하고 문을 열어봤다.

345kV M.Tr(주변압기) 점검보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운영 사업소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안전모, 안전화, 안전 허리띠, 야광 안전 조끼 차림으로 꾸뻑 인사를 하면서 평와셔(Washer)가 하나 필요한데 혹시 갖고 계시는가 해서 왔다고 했다.

감리 사무실에 와서 자제 부속품을 찾는 것이 엉뚱했다.

우리 사무실은 그런 자재나 공구를 비치하는 곳이 아니라고 했다.

머쓱해 했다.

작업을 하다 보니 그게 하나 부족한데 구하러 나가자니 번거롭고 시간도 여의치 않아 왔다며 돌아가려고 했다.

 

젊지 않은 그 작업자의 처지가 안쓰러웠다.

정해진 휴전 시간이 얼만 안 남았다.

시간에 맞춰 작업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그 작은 와셔 하나가 없어서 작업이 중단된 상태인 것이다.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 와셔를 구하려고 발전소 밖으로 나가야 하고, 그동안에 많은 작업자가 기다릴 판이었다.

 

다급하고 안타까운 사정을 생각하니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언뜻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시공회사 창고였다.

잠깐만요라는 말로 작업자를 불러 세웠다.

우리는 없지만 저기에 가면 있을 것도 같다면서 창고로 데리고 가 안에서 찾아보라고 했다.

한때는 잘 나가 인기를 구가하다가 손 놀이 잘못하여 패가망신해 근근하게 사는 고등학교 한참 후배인 황()척 보면 압니다처럼 전문가들은 척 보면 안다.

와셔가 저 여기 있으니 가져가세요하고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작업자가 들어가자마자 와셔 몇 개를 찾아 들고나왔다.

밝은 표정으로 환하게 웃으면서 고맙다고 절을 열 번은 더 했다.

 

미당 선생도 기분이 좋았다.

자기 일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작업자가 믿음직스러웠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실상 무슨 작업을 하고 나면 와셔 같은 것은 남는 것이 보통인 우리나라의 작업 현장인데 어쩌면 빠트릴 수도 있는 와셔 하나를 찾기 위하여 뛰어다니는 모습이 좋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돌아서는 작업자한테 일하다 보면 그럴 때가 있는데 하찮은 것이라도 이렇게 도우면서 하면 한결 더 부드럽다고 하였더니 그렇다면서 다시 인사를 하고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상부상조라고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서로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살면 일도 잘 풀리고, 그게 바로 행복이다.

작업자가 가고 나니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것이지만 꼭 있어야 하는 것이 없으니 난감했을 텐데 바로 옆에서 찾았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를 생각하니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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