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이 반평생으로
<한국전력 電友會報 기고문 2020년 11월호>
[응애응애(갓난아기 울음소리)
할머니: 어쩌면 지금 태어난 우리 손자는 150살까지 살 수도 있다네요.
어이구! 150살이라니 내 나이의 두 배나 살아야 한다는 데 잘 살 수 있을까요?
나레이션: 오래 사는 일이 걱정이 아닌 기대가 되도록…]
G 제약회사의 광고 카피다.
잘 만들었다.
누구라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마음이 움직이는 카피다.
한데 내용상으로는 생각해볼 일이다.
기대인지 우려인지, 축복인지 저주인지 좀 아리송하다.
듣고 생각하기 나름일 것 같은데 그 나이까지 사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단다.
전문가들 얘기를 들어보면 인간 수명을 150살까지 거론하는 것이 좀 이르긴 해도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란다.
나이 개념도 세월 따라 달라진다.
정년퇴임 나이가 만으로 60세이니 전우회 OB라면 환갑 이상의 나이다.
YB 적에는 환갑 나이라면 상노인으로 알고 살아온 세대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그 상노인이 더 상노인이 되어 환갑은 청춘이라고 한다.
고희는 돼야 인생의 묘미를 좀 알 수 있다고 한다.
노인을 공경하고 봉양해야 하는 청춘들은 그런 흐름이 못마땅할 것이다.
차마 노욕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동의하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너무 앞서가고, 비약하고, 자기 합리화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할 것 같다.
그래도 현실은 현실이다.
지금 우리는 장수시대로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부정할 순 없다.
노년들만큼이나 청춘들도 걱정인가보다.
어느 기사를 보니 사오정(사오십 대)들은 정년이 연장되고 은퇴한 후인 70이 넘어서도 일하기를 희망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호불호가 충돌한다.
좋게 말하면 경험을 되살려 세상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희망 사항이겠지만 안 좋게 말하면 젊어서 죽도록 일을 했는데도 남은 것이 없어 호구지책으로 일터로 가야 한다는 절망의 소리일 수도 있다.
청춘들의 취업난, 노년들의 노후문제, 국가 사회적은 물론 사적인 이해득실 문제 등 여러 가지가 걸려있는 난해한 명제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돼야 할 사안이 아닌가 한다.
오비 파이팅(OB Fighting)이다.
얼마 전에는 은행 지점장으로 잘 나가다가 명예퇴직한 10년도 넘는 후배가 준비하던 전기기사 2차 실기 시험에서 점수가 조금 모자라 불합격했다면서 아쉬워했다.
먼저 수고했고,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이어서 그 정도면 합격권에든 것이니 될 때까지 밀어붙이라고 격려했다.
바로 전에는 퇴직을 앞둔 사무직 간부 후배들이 전기기사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여 응원해야 한다고 했다.
변신하여 재취업하는데 경력 측면에서 일정한 제약이 있을 수는 있지만 얼마든지 가능하고, 인문사회 계열 출신이 이공계 업무를 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현직에 있을 때 어깨너머로 안 것도 만만치 않은 좋은 경험이 될 테니 주변 사람들이 협조해 줘야 한다고 주장을 하기도 했다.
요즈음은 기술사 시험을 준비하는 전·현직 후배들을 밀고 있다.
크게 도와줄 것은 없다.
수험 경험담을 개략적으로 이야기하고는 “나 같은 사람도 했는데 유능한 후배가 걱정하는 것은 안 됩니다. 바로 될 시험은 아니고, 실수를 연발할 수도 있지만 얼마든지 해낼 수 있으니 여유를 갖되 독하게 질러봅시다” 라는 인사로 독려를 한다.
광고 카피가 말해주듯이 한평생으로 여기던 70살이 서서히 반평생으로 돼 가고 있다.
그렇다면 반평생이 넘은 사람은 물론이고, 한평생이 한참 남은 사람이라면 다가올 150년을 위하여 뭔가는 해야 할 것이다.
먼 훗날 남의 일로만 여기고 무관심하던 것이 자신에게 닥쳤다.
걔들이 일부러 갑자기 닥쳐온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자연스럽게 갑자기 맞이하게 된 것이다.
피하고 싶은 도전이지만 응전해야만 한다.
안 그러면 비굴하게 백기 항복하고 무장 해제되어 무너지게 된다.
수염 쓰다듬으며 체면 차릴 때가 아니다.
“이 나이에 내가 하랴” 라는 임하룡 개그맨의 대사보다는 “내 나이가 어때서” 라는 오승근 가수의 가사가 더 힘을 받아야 한다.
그리하여 좋은 것은 진취적으로 커나가는 청춘들이 맡고, 안 좋은 것은 안정적으로 있어야 할 노년들 맡아서 하면 찰떡궁합으로 안정된 NS 극의 자석이 될 것이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충고를 하나 곁들이자면 청춘이고 노년이고 오바하지 말고 방종이나 주책은 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풍경 좋고 따뜻한 남쪽 마을이지만 대전(大田) 사람으로서는 먼 타향객지인 삼천포 현장으로 투입되어 송·변전 분야 감리단장 임무를 수행한 지도 어언 2년여가 다 돼 간다.
발주기관인 한전 남부건설본부와 감리 소속회사인 천안의 ㈜대림 MEC와 ㈜부흥기술단에서 많은 지도와 지원을 아끼지 않아 잘 꾸려나가고 준공을 얼마 안 앞두고 있어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스럽다.
그간에 애로사항도 적지 않았다.
OB 7년 차의 노년으로서 청춘의 현장에 있다 보니 어려운 점, 부족한 점, 어설픈 점, 아쉬운 점, 바라는 점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조직원으로 위치를 지키고 할 일을 하면서 일정 수준 적응을 하게 되어 보람이고, 즐겁고, 고맙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들이 터질지 모르는 전력 사업의 현장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를 너끈히 이겨내고 여기저기 골고루 보탬이 되도록 더욱더 정진하고 성실하게 임해야 할 텐데 여태까지 이어온 그 기조를 계속해서 이어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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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