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일편
미당 선생은 자칭 수필가 또는, 작가다.
등단도 했고, 문인협회회원이기도 하다.
동명이인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로 시작하는 주옥같은 시 “국화 옆에서”의 시인인 전북 고창 서정주 선생님의 호를 흉내 낸 것이 아니다.
미완성의 집이라는 의미의 미당(未堂)이 아니라 본인이 나고 자란 고향인 아름다운 집이라는 의미의 미당(美堂)을 사랑하는 맘에서 호로 쓰고 있는 것이다.
미당은 나홀로다.
혼자 좋아서 그런다.
가끔 원고 청탁을 받아 쓰긴 하나 대외적인 활동은 거의 안 하는 편이다.
그러니 문화예술이라던가 작가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
자학하는 것은 아니다.
글 쓰는 데 남다른 끼가 있는 것은 사살이다.
말로서 하지 못 하는 것을 글로서는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
뭘 본다거나, 듣는다거나, 느낀다거나 하면 술술 나온다.
본인이 써 놓고도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나 하고 의심이 들 때도 있다.
글 쓰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자신을 슬퍼하거나 기뻐하는 좋은 수단으로 자리매김한지 오래 됐다.
흡연가가 배불릴 빵빵하게 먹고 나서 한 대 꼬나 물고 한 모금 쭉 빨아들이면 꿀맛은 저리 가라는 것처럼 시간이 있을 때 책상 앞에 앉아 메모해뒀던 것을 참고로 하여 자판을 두드려 나가면 누에가 실을 뽑아내듯이 술술 나오는 것이 그리 편안할 수가 없다.
작품이라기보다는 일기 같은 수필이다.
그러다 보니 다작이다.
보통 A4 용지 2-3장 분량의 글을 매일 한 편 정도 쓰는 편인데 어떤 때는 주제가 있으면 하루에 몇 편씩 쓸 때도 있다.
주변에서는 수필집을 내라고 한다.
경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소리가 나올 때 마다 웃는 것으로 대신한다.
여태까지 쓴 글을 책으로 발간하면 백 권 이상도 될 것이고, 엄선해서 만든다 해도 수 십권은 될테지만 책을 내고 싶지는 않다.
남들한테 오프라인 문서 형식으로 보여 줄만한 것이 못된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것이지만 흥행이나 배포 같은 난관에 봉착하기 때문에 아예 출판을 생각하지도 않는 것이다.
많이 쓴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양보다는 질이라고 하듯이 다작이 오히려 책잡히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
다만 면 편이라도 좋은 글만 있으면 작가로서 충분히 인정받고 보상받을 수 있다.
L 화백.
어디선가 이름을 많이 들아 봤다.
꽤 유명한 작가인 것 같다.
그런데 어제 어떤 TV 프로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대담을 했다.
작품 하나 만드는데 14시간 이상 혼신의 힘을 다 하여 완성한단다.
존경스러웠다.
그런데 다음이 이상했다.
그런 작품을 하루에 한 편 그러니까, 한 달에 30편 이상 만들고 어느 때는 40편 이상도 만든단다.
미술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아무리 달인이라 해도 그게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었다.
연필로 작은 종이에 대충 스케치하는 것도 아니고 대작을 그렇게 만들어 내어 지금까지 수 천 편 이상을 만들었다니 놀라웠다.
또 있다.
믿을만한 화랑에서 그림을 갖고 와 사인 즉, 낙관을 해달라고 하면 내 작품은 내가 알기 때문에 믿고서 확인해본 후에 “이게 어디서 나왔어” 하면서 사인을 해준단다.
그림 그린다고 하다가 대작과 외주 제작 논란에 휩싸여 본인 말대로 패가망신한 조(趙) 가수가 언뜻 떠올랐다.
대문호처럼 대화가라는 소리를 듣는 유명 작가가 왜 그런 구설수에 올랐는지 모르지만 실상과 내막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눈치였다.
예술계나 언론계에서 침소봉대하여 판을 벌여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L 화백 건은 너무 중대한 사안이어서 어안이 벙벙하다.
세계적인 P 화가도 국가적인 K 화가도 찍어내듯이 그려낸 다작 때문에 예술성과 가치를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평론을 본 적이 있는데 비슷한 멘트를 듣고 나니 별로 기분은 안 좋았다.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모를 세상이 많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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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