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저희가 전문이잖아요

Aphraates 2021. 3. 11. 06:26

이웃 동네 공사 현장을 둘러보았다.

직접 관리하는 것은 아니어도 가끔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와는 발주처와 시공사가 다르다.

그러나 우리 설비와 인접 연관되어 벌이는 공사다.

지원이나 통제를 해야 할 경우가 있을 수도 있어 제삼자로서 관심을 갖는 것이다.

 

오늘은 케이블 포설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거대한 덕트와 트레이다.

기존 설비와 관련한 케이블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포설되어 있어서 여유 공간이 없는 현장 실정이다.

대부분의 증설 보강 설비 공사가 그렇듯이 기존 설비를 운용하면서 동시에 벌여야 하는 것이어서 신설 공사보다 난관과 애로사항이 많다.

 

오늘 현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덕트 뚜껑을 열어 놓고 케이블 포설 작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작업자들을 향해 수고들 하신다고 큰소리를 인사한 후 작업 책임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가능하기에 하는 작업이니 하는 것이겠지만 언뜻 봐서는 도저히 케이블을 포설할 여유 공간이 없을 것 같은데 무슨 비법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설명을 했다.

노후화된 트레이에 워낙 많은 케이블이 포설되어 주저앉은 곳도 있고 하여 신설 포설하는 것처럼 질서정연하게 포설할 수는 없을 테지만 비집고 포설하면 될 것 같다면서 얼굴을 바라보며 저희가 전문가잖아요. 그 정도는 해야지요라고 말했다.

 

전문가, 다음

긍정적으로 임하는 것이 믿음직스러웠다.

일을 잘할 것도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케이블을 깔라고 하는 것인지 투덜거리며 불만을 토로할 만도 한데 자기들이 맡은 일이니 어떻게든 하겠다니 그 장인정신이 숭고했다.

개발 시대에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기치 아래 갖은 악조건과 온갖 수난을 겪으면서도 오늘의 우리를 만든 어른들이 다시 한번 고맙게 생각되었다.

미당 선생도 그에 작은 역할이나마 담당했다는 소리를 해도 무리는 아니지만 우리 앞 분들과 뒤 분들이 이끌고 밀어줘서 그런 것이라는 겸양의 미덕을 지키고 싶다.

 

좋은 분위기 상황에서 덕담을 안 하면 도리가 아니다.

대단들 하시고 일이 잘될 것 같다면서 혹시 도움이 필요하다던가 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저기 우리 감리단 사무실로 오시라고 하였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고운 것이다.

실제로는 뭐 하나 도와줄 것이 마땅치 않지만 인사로라도 그리 말하니 상대방도 기분이 좋은지 고맙다면서 안전하게 작을 마무리하겠다고 하였다.

 

우리는 우리 사무실에서 일을 했다.

밖에서는 구령에 맞춰 케이블 포설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동안 그러다니 점심시간 무렵이 되자 조용해졌다.

작업하는 데 방해가 될까 봐서 사무실 안에서 숨죽이고 있었는데 밖이 왜 이리 조용한가 하고 살며시 문을 좀 열고 봤더니 현장이 잘 정리되고 덕트 뚜껑도 다 덮여있었다.

케이블 포설 작업이 끝난 것이었다.

 

어떻게 작업을 했는지 궁금했다.

출입구를 통하여 들어가 작업 실태를 살펴보니 깔끔하게 포설되어 있었다.

산고를 겪고 태어난 무슨 예술 작품 같았다.

역시 각자 할 일들이 다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렇게 유기적으로 맞아 돌아가기 때문에 세상이 굴러가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사 현장을 비롯한 일선에서 가끔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 있다.

이론상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데 현실로 가능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론상으로는 가능한데 현실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도 있다.

그래서 탁상행정이니 무대포니 하는 상반된 표현들이 나오는 것인데 그럴 때는 이론과 실기가 잘 조화를 이루면 부드럽게 될 것이다.

이론 지상주의나 현실 지상주의만으로는 복잡 다원화된 세상에 일어나는 별의별 문제들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만족스러운 답을 구하기가 어렵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도 필요하고, 비전문가도 필요하고, 협업도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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