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타임
사소한 것으로부터의 작은 기쁨,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의 작은 행복, 표나지 않는 것으로부터 조금씩 쌓여가는 작은 사랑과 믿음과 소망이 있다면 잘 사는 것이다.
복 받은 것이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커피 타임이 아닌가 한다.
눈을 뜨면 먼저 물을 끓여 엷게 탄 커피 한 잔을 옆에 두는 것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그렇다.
성찬이든 빈찬이던 뿌듯하고 맛있게 하고 느긋하거나 바쁘게 나누는 커피 한 잔이 그렇다.
바로 옆이어서 금방 달려가든 멀리 있어 시달리며 가까스로 도착하든 사무실에 출근하면 피시를 켜는 것과 동시에 테이크 아웃 잔이나 종이컵에 담아내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 잔이 그렇다.
손님이 오거나 동료와 함께하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처럼 우리 차 한 잔 할까요 하면서 건네는 커피 한 잔이 그렇다.
한때는 비싼 외화를 들여 그 많은 커피를 수입해야 하느냐며 우리의 것이 좋은 것이니 우리 식으로 숭늉을 마시거나 국산 차를 애용하자는 소리도 있었고,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온다거나 건강을 해칠 수도 있으니 삼가자는 권고도 있었고, 그 쓰디쓴 커피가 뭐가 좋아서 노상 입에 달고 다니는지 모르겠다며 생활 스타일을 바꾸자는 캠페인도 있었던 등 커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이 평정되어 차 한잔이라고 하면 커피 한 잔이라는 말이 어색하지가 않다.
미당 선생은 커피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맘과 맘으로 이어지는 소맥 폭탄처럼 어울리면 함께 한 잔 하는 정도다.
마니아도 마타도어도 아니다.
일부러 찾지도 않고 기회가 되면 사양하지 않고 어울림으로 한 잔 한다.
반면에 커피 탐임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찬성이다.
체질적으로까지는 어떤 영향이 있는지 관심이 없으나 커피 타임은 일상에 여유를 갖게 하고 활력소로의 역할이 커 좋다는 생각이다.
할 일도 안 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죽치기 앉아서 커피 다임을 갖는 것은 지양되어야겠지만 커피 타임은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이기도 하다.
권장하고 싶은 커피 타임도 코로나 때문에 절단났다.
몇 명이라도 모이면 내가 거기에 있겠다는 말씀이나 내가 불을 끄러 온 것이 아니라 불을 지르러 말씀도 있지만 죄송스럽게도 이상한 스탠스로 규정할 수밖에 없는 커피 타임이 되었다.
언제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옛 영광을 되찾을지도 기약이 없다.
커피 타임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삭막해졌다는 것이기도 하다.
빨리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지난날처럼 자유로운 커피 타임이 될 수는 없겠으나 너무 위축되지 않았으면 한다.
방역 지침을 준수하면서 커피 타임 정도는 갖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희망 사항이기도 하지만 쉽지는 않으리라는 예감이다.
노트북이 이상해졌다.
한 2년여 동안 밥값을 톡톡히 했는데 탈이 났는지 작동이 원활치 않았다.
웬만한 것은 조치할 수 있어서 인터넷과 이메일 상담을 통하여 나름대로 시스템 복원을 시도해봤으나 안 됐다.
노트북이 그러니 한쪽 눈이 감긴 느낌이었다.
퇴근하거나 출근 전에는 그를 항상 켜놓고 업무 처리, 정보 및 자료 검색, 창작 활동과 자료 작성, 음악 감상과 국내외 간접 여행 등등을 하면서 요긴하게 사용했는데 갑자기 버벅거리니 손발이 묶이고 허우적거리는 깜깜이 신세였다.
가능한 한 빨리 수리를 해야 했다.
삼천포에서 올라와 짐을 부리자마자 다른 것은 데보라한테 맡기고 노트북을 들고 갤러리아 건너편에 있는 S 서비스센터로 갔다.
겉보기와는 달리 상당한 규모였다.
안내원과 담당 엔지니어가 친절하게 처리를 해줬다.
큰 문제는 아니고 S/W가 엉킨 것 같다면서 시간이 좀 걸리니 차 한 잔 하시면서 기다려 달라고 하였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차 한 잔 하라는 소리였다.
그냥 앉아서 기다리겠다고 하였더니 그러시라고 하는데 차 한 잔 안 마셔도 커피 한 잔의 향이 은은히 퍼지는 아늑한 느낌이었다.
A/S는 시간이 얼마 안 걸렸다.
붙잡고 늘어지던 뭔가 하나 해결됐다는 후련한 맘으로 사방팔방 두리번거리며 보는 것으로 막 시작된 듯한 봄기운과 함께 터벅터벅 걸었다.
단지 안으로 들어서 119동 쪽으로 향하는데 저만치에서 용 & 영 자매님이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한참만이어서 반가웠다.
서로가 웬일들이냐고 안부 인사를 나눴다.
성당 행사를 마치고 차 한 잔 나누었다고 하셨다.
역시 기분 좋게 들리는 차 한 잔이라는 소리였다.
아주 좋은 모습이며 사는 것처럼 사신다는 덕담을 시작으로 성당과 가정과 주변 이야기를 나눴다.
유쾌한 오후였다.
비록 직접 커피 한 잔 향을 음미한 것은 아니나 살아있는 커피 한 잔의 즐거움을 두 번씩이나 느끼다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 말라고 해도 나는 나대로 한다며 독불장군처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계속되는 고난을 거부하지 않고 기꺼이 맞이하고 이겨내면서 갖는 작은 일상에서 비롯되는 소박한 희로애락의 묘미를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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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