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커피 타임

Aphraates 2021. 3. 20. 05:31

사소한 것으로부터의 작은 기쁨,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의 작은 행복, 표나지 않는 것으로부터 조금씩 쌓여가는 작은 사랑과 믿음과 소망이 있다면 잘 사는 것이다.

복 받은 것이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커피 타임이 아닌가 한다.

 

눈을 뜨면 먼저 물을 끓여 엷게 탄 커피 한 잔을 옆에 두는 것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그렇다.

성찬이든 빈찬이던 뿌듯하고 맛있게 하고 느긋하거나 바쁘게 나누는 커피 한 잔이 그렇다.

바로 옆이어서 금방 달려가든 멀리 있어 시달리며 가까스로 도착하든 사무실에 출근하면 피시를 켜는 것과 동시에 테이크 아웃 잔이나 종이컵에 담아내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 잔이 그렇다.

손님이 오거나 동료와 함께하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처럼 우리 차 한 잔 할까요 하면서 건네는 커피 한 잔이 그렇다.

한때는 비싼 외화를 들여 그 많은 커피를 수입해야 하느냐며 우리의 것이 좋은 것이니 우리 식으로 숭늉을 마시거나 국산 차를 애용하자는 소리도 있었고,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온다거나 건강을 해칠 수도 있으니 삼가자는 권고도 있었고, 그 쓰디쓴 커피가 뭐가 좋아서 노상 입에 달고 다니는지 모르겠다며 생활 스타일을 바꾸자는 캠페인도 있었던 등 커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이 평정되어 차 한잔이라고 하면 커피 한 잔이라는 말이 어색하지가 않다.

 

커피 한 잔의 행복, 다음

미당 선생은 커피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맘과 맘으로 이어지는 소맥 폭탄처럼 어울리면 함께 한 잔 하는 정도다.

마니아도 마타도어도 아니다.

일부러 찾지도 않고 기회가 되면 사양하지 않고 어울림으로 한 잔 한다.

 

반면에 커피 탐임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찬성이다.

체질적으로까지는 어떤 영향이 있는지 관심이 없으나 커피 타임은 일상에 여유를 갖게 하고 활력소로의 역할이 커 좋다는 생각이다.

할 일도 안 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죽치기 앉아서 커피 다임을 갖는 것은 지양되어야겠지만 커피 타임은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이기도 하다.

 

권장하고 싶은 커피 타임도 코로나 때문에 절단났다.

몇 명이라도 모이면 내가 거기에 있겠다는 말씀이나 내가 불을 끄러 온 것이 아니라 불을 지르러 말씀도 있지만 죄송스럽게도 이상한 스탠스로 규정할 수밖에 없는 커피 타임이 되었다.

언제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옛 영광을 되찾을지도 기약이 없다.

커피 타임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삭막해졌다는 것이기도 하다.

빨리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지난날처럼 자유로운 커피 타임이 될 수는 없겠으나 너무 위축되지 않았으면 한다.

방역 지침을 준수하면서 커피 타임 정도는 갖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희망 사항이기도 하지만 쉽지는 않으리라는 예감이다.

 

노트북이 이상해졌다.

2년여 동안 밥값을 톡톡히 했는데 탈이 났는지 작동이 원활치 않았다.

웬만한 것은 조치할 수 있어서 인터넷과 이메일 상담을 통하여 나름대로 시스템 복원을 시도해봤으나 안 됐다.

노트북이 그러니 한쪽 눈이 감긴 느낌이었다.

퇴근하거나 출근 전에는 그를 항상 켜놓고 업무 처리, 정보 및 자료 검색, 창작 활동과 자료 작성, 음악 감상과 국내외 간접 여행 등등을 하면서 요긴하게 사용했는데 갑자기 버벅거리니 손발이 묶이고 허우적거리는 깜깜이 신세였다.

 

가능한 한 빨리 수리를 해야 했다.

삼천포에서 올라와 짐을 부리자마자 다른 것은 데보라한테 맡기고 노트북을 들고 갤러리아 건너편에 있는 S 서비스센터로 갔다.

겉보기와는 달리 상당한 규모였다.

안내원과 담당 엔지니어가 친절하게 처리를 해줬다.

큰 문제는 아니고 S/W가 엉킨 것 같다면서 시간이 좀 걸리니 차 한 잔 하시면서 기다려 달라고 하였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차 한 잔 하라는 소리였다.

그냥 앉아서 기다리겠다고 하였더니 그러시라고 하는데 차 한 잔 안 마셔도 커피 한 잔의 향이 은은히 퍼지는 아늑한 느낌이었다.

 

A/S는 시간이 얼마 안 걸렸다.

붙잡고 늘어지던 뭔가 하나 해결됐다는 후련한 맘으로 사방팔방 두리번거리며 보는 것으로 막 시작된 듯한 봄기운과 함께 터벅터벅 걸었다.

단지 안으로 들어서 119동 쪽으로 향하는데 저만치에서 용 & 영 자매님이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한참만이어서 반가웠다.

서로가 웬일들이냐고 안부 인사를 나눴다.

성당 행사를 마치고 차 한 잔 나누었다고 하셨다.

역시 기분 좋게 들리는 차 한 잔이라는 소리였다.

아주 좋은 모습이며 사는 것처럼 사신다는 덕담을 시작으로 성당과 가정과 주변 이야기를 나눴다.

 

유쾌한 오후였다.

비록 직접 커피 한 잔 향을 음미한 것은 아니나 살아있는 커피 한 잔의 즐거움을 두 번씩이나 느끼다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 말라고 해도 나는 나대로 한다며 독불장군처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계속되는 고난을 거부하지 않고 기꺼이 맞이하고 이겨내면서 갖는 작은 일상에서 비롯되는 소박한 희로애락의 묘미를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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