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다시 월요일로

Aphraates 2021. 3. 29. 05:41

바쁘면서도 즐거운 주말이었다.

남들은 어려운데 나 홀로 미소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고 웃음을 띠는 것이다.

 

사람이 닥치면 닥치는 대로 다 하게 되어 있다.

그 결과는 차후 문제다.

원래 기대했던 것처럼 제대로 나왔거나 전혀 다르게 나왔거나 하는 것과 무관하게 바쁘면 바쁜 대로 머리가 팡팡 돌아가고 몸이 홱홱 움직인다.

좋은 일이다.

바쁘고 어려워 씩씩거릴지라도 잘 견디면 이기는 것이어서 발전하여 추후를 기약할 수 있고, 버거워서 힘 한 번 제대로 못 써보고 못 견디면 지는 것이어서 답보나 퇴보하여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

 

새벽잠이 깨자마자 집안 정리정돈에 들어갔다.

주일날 성당 부활 대청소는 시간상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집안 정리를 하고 난 후에 새로운 성지 가지를 고상에 얹고 싶었다.

 

데보라를 도와 삼천포에서 가져온 겨울옷을 정리했다.

동녘이 밝아오면서는 따로 다른 일을 했다.

데보라는 주방에서 가져온 식료품을 구분하여 냉장고, 김치 냉장고, 냉동고에 입고시켰다.

미당 선생은 소리 안 나게 베란다 정리를 했다.

안 해도 되고, 급한 것이 아니나 정리를 해야 개운할 것 같았다.

정리하면서 지난겨울 혹한을 견디지 못하고 이파리가 하나도 없이 몸통만 남은 화수목들을 보니 미안했다.

수십 년 동안 잘 견디다가 추위 한 번에 그냥 나가떨어진 것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누렇게 된 이파리들을 잘라냈다.

더 따스할 때까지 기다려보려는 것인데 회생 가망이 없어 보였다.

어제저녁에 손빨래해서 건조대에 널어놓은 겨울 잠바들도 매만졌다.

아직도 물기가 덜 빠져 무거워 보이고 실제로 들어보니 무거웠다.

세탁기 빨래는 데보라가. 손빨래는 어울리지 않게 미당 선생이 담당한다.

화장실에서 커다란 물통에 물을 받아 데보라가 적당하게 풀어주는 세제를 넣어 북북 문지르거나 밟아 대는 것이 재밌다.

작은 창고에 있는 공기구와 잡동사니도 꺼냈다 냈다 하며 자리를 바꾸는 것으로 정리를 했다.

커다란 비닐 봉지 포대와 폐지를 모아 놓은 박스들을 마무리하여 차곡차곡 쌓았다.

본가 큰형님 화덕 불쏘시개용이다.

갖다 드리면 요긴하게 쓰시어 작은 종이 한 장도 허투루 안 버리고 모았다가 가져간다.

날이 완전히 밝아져 청소기를 돌려도 좋을 시간에는 창문을 활짝 열어 청소기로 베란다에 쌓인 먼지를 싹 빨아들였다.

 

집 정리를 마무리하고는 9시로 예약된 문화동 대학병원으로 갔다.

본격적인 출근 시간 전이라서 그런지 교통체증은 없었다.

얼마 안 걸려 병원에 도착하여 카운터에서 접수 결제 절차를 마치고는 진료과로 올라가 왔노라고 도착을 확인했다.

담당 간호사님의 안내에 따라 초음파 검사를 했다.

진료 시간은 순서에 따라 좀 기다려야 했다.

한 자리리 건너서 앉는 대기실은 환자들이 꽉 차서 자리가 없었다.

복도 대기 의자에 앉아 갖고 간 파일철을 열어 신재생 에너지 과목 문제와 답을 탐독했다.

보고 또 봐도 돌아서면 새로운 것 같아 몇 번이고 되풀이해야 하는 것들이 상당하여 진도가 더디지만 물러설 수는 없다.

주치의 선생님으로부터 초음파 영상을 봐가면서 진료를 받았다.

정상이니 잘 관리하라 하셨다.

일 년 후에 다시 보자면서 그동안에 불편하거나 아프면 바로 내원하라는 소리가 기분 좋았다.

 

진료가 끝나자마자 둔산동 K 회관으로 달려갔다.

L 사 프린터 A/S를 받기 위해서였다.

한 손에는 노란 보자기로 싼 프린터를 들고, 다른 손에는 프린터와 연결할 노트북을 들었다.

처음 온 빌딩인데 상당히 높고, 크고, 정결했다.

엘리베이터 안내판을 보니 각종 기관, 회사, 보험사를 비롯한 금융사들이 입주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건물 임대 사업을 하는 것 같았다.

그 단체는 준 공공기관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수익사업을 한다는 것이 안 어울리고 이해충돌이 발생할 것 같았지만 회원들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것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린터 수리는 시간이 좀 걸렸다.

수리 담당 기사님이 수리 내용과 사용 방법을 설명해줬다.

자세히 알려주는 것이 고마웠다.

나도 전기 전문 기술사이고, 전기회사에서 정년퇴직한 테크니시언(Technician, 기술자, 전문가)라고 하였더니 호감을 표했다.

신의 직장에 다니신 것이 얼마나 좋으시냐며, 거기에다가 기술사이시라니 대단하시다고 하며 부럽다고 하였다.

자세를 낮추고 대화를 이어갔다.

지금은 취업하기가 어렵다 보니 공기업을 신의 직장이라고 하는데 우리 땐 그 정도는 아니었고, 기술사도 뜻이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니 생각이 있으면 한번 해보라고 권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성당과 개인사를 챙겼다.

주중에는 삼천포에 있어서 처리하지 못 하는 일들이 꽤 되는데 이렇게 하루 휴가를 내어 몰아서 처리하면 여러 가지를 할 수가 있다.

빨리빨리 마무리해야 저녁에 소맥 폭탄 전투 작전이 순조롭게 될 것이라면서 방울 소리 나게, 눈썹이 휘날리게, 신발 타는 냄새가 나도록 움직이다 보니 몸이 나른하고 잠이 밀려왔다.

주중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일에 푹 쉬니 좋다고 하신 것처럼 당신 모상대로 임하는 것이 흡족하여 잠깐 눈붙이는 것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토/일/월요일, 다음

주말과 주일은 가고 이제 다시 주초 월요일이다.

월요병은 걱정하지 않는다.

일부러 극복하려고 수고할 필요가 없다.

오늘은 오늘에 맞게 맞이하고 취하면 되니 그에 충실하면 만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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