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꼴통&고문관

Aphraates 2021. 4. 14. 04:26

서슬 시퍼렇던 시절이다.

미운털이 박히거나 뭐 하나 걸리면 절단났다.

말로만 그런 엄포가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시국인데도 틈새는 있었다.

각박한 속에서의 인간적인 측면이 있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엄격한 규제와 단속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일탈에 길든 구태의연한 사례가 없지 않았다.

평범이 아니라 돌출이었다.

똘똘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나 힘꽤나 쓰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도 예비군 훈련장에서나 볼 수 있는 고문관과 꼴통은 항상 있었다.

 

신입 사원 때다.

회사 내에서는 벽지로 통하던 곳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우리 고향 청양이었다.

물 좋고, 공기 좋고, 인심 좋은 청정지역이자 충남의 알프스라고 해서 찾아간 것이 아니라 지긋지긋한 타향 객지 생활이 싫어 물어물어 찾은 첫 임지였다.

 

하루는 상급 사업소 감사 부서에서 근태 점검을 나왔다.

군 제대를 한 지도 안 된 신입 사원이라 군기가 바짝 들었으니 평소 하던 대로 하면 되는데 그래도 바짝 긴장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찬바람 홱홱 부는 선임 감사원이 근엄한 표정으로 도착했다.

출근부, 복장 상태, 근무 일지, 비상 연락망, 설비 관리 실태 등을 점검했다.

잘하고 있다면서 언제 어디에서 근태 점검을 나올지 모르니 항상 긴장감을 갖고 근무하라 일장 훈시를 하면서 재미난 이야기를 했다.

 

관련 기관과 합동으로 연말연시 공직기강 확립 차원으로 감사와 점검하러 다니는데 어이없는 일도 있다고 했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살벌한데도 그러거나 말거나 무관심한 직원들도 있다면서 그 당시 사업소 꼴통 직원으로 유명한 정년퇴임이 얼마 안 남은 선배님 이야기를 했다.

 

저녁 근무 교대 시간에 현장 점검을 나갔단다.

출퇴근 시간인 오후 6시가 되자 그 양반이 가방 하나를 자전거 앞에 달고 출근하는데 보니 얼찐해 있더란다.

기가 막혔지만 근태 점검자로서 방관할 수 없어서 지적했단다.

선배님 같은 분이 솔선수범하셔야지 연말연시 특별 단속 기간 중에 술을 드시면 어쩌자는 것이냐며 새까만 후배들 부끄럽지 않게 해 주시라 했단다.

그랬더니 오히려 역정을 내더란 것이다.

회사에서 근무 시간에 술을 먹은 것도 아니고 근무 전에 집에서 먹은 것인데 웬 시비냐며 술 한 잔 사줘 본적이 있느냐며 떼를 쓰더란 것이다.

더 얘기해봐야 입만 아플 것 같아서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다는데 감사원으로서 어찌나 화가 치미는지 선배고 뭐고 들이받으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는 것이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는 그런 일도 있었다.

아니, 그보다 더 한 일도 그냥 넘어가는 것이 많았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조그만 틈새만 있어도 누가 채 가는지도 모르게 채갈 것이고, 죽으려면 무슨 짓을 못 하겠느냐는 질타를 받을 테지만 그때는 그대로 통용되던 기가 막힌 일들도 있었다.

 

귀염 꼴통, 다음
무개념 꼴통, 다음
못말리는 고문관1. 다음
못말리는 고문관2, 다음
천진난만한 꼴통, 다음

하나 어디 그때뿐인가.

지금도 개념 없는 그런 꼴통과 고문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형태만 다르고 수법만 고도화되었지 내용적으로 보면 그때보다 더 희한하고 심한 꼴통과 고문관이 존재하고 있다.

 

<'술 전날 먹었는데요?' 운전자 10명 중 1명 숙취운전 불감증> 이라는 기사가 그때 그 시절을 소환하여 웃음 짓게 한다.

한번 걸리면 패가망신시킨다고 해도 뭘 그러느냐고 실실 웃으며 태연하게 우습고도 심각한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5030교통 규칙이 계도 기간을 거쳐 현장 적용된다는데 잘 됐으면 한다.

일거에 좋아질 수는 없을 테지만 노력하면 된다.

각자가 지킬 것은 지키고, 할 것은 해서 작은 것으로부터 더불어 사는 묘미를 알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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