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가오동

Aphraates 2021. 5. 4. 05:25

대전의 가오동과는 인연이 깊다.

많은 추억과 그리움이 어려있다.

핵심 도심지는 아니나 대규모 주택단지로 변모하여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라떼로와 비교해 보면 상전벽해다.

대덕군의 산내와 금산으로 가는 길에 있다.

포도밭이 많았고, 숨두부촌으로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뒤편으로는 식장산이 높이 솟아 있고, 앞으로는 만인산 쪽에서 발원한 대전천이 흐른다.

거기에서 엄마들은 빨래하시고, 아이들이 멱을 감고 놀았다.

그런 가오동의 모습은 일반인들에게 통하는 것이었다.

한 술 더 떠 미당 선생을 비롯한 전력인들에게는 남다른 감회가 어린 곳이다.

호남권과 중부권과 재경권을 잇는 송전선로가 집중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축에 들었던 가오동 변전소가 위치하여 수많은 전력인들이 그곳과 인연이 있다.

대한민국의 전력인이라면 그곳을 안 거쳐 간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전기 계통에서는 잘 알려진 변전소였다.

특히 충청도의 한전인과 업계 관계자를 포함한 전력인들에게는 애증이 교차하는 전기의 메카(Mecca, 중심지)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빡빡머리로 입사한 바로 전 선배님들과는 달리 한전 입사가 꿈이었지만 군필자 위주로 채용이 변경되어 입사가 거의 불가능하였던 미당 선생 세대 또래에게는 부러워하고 부러워해도 모자란 꿈에 그리는 곳이었다.

 

빛바랜 꿈이지만 이루긴 이뤘다.

운이 좋았는지, 때를 잘 만났는지 모르나 군대를 제대하고 느지막하게 거기에 입성하여 그 일원이 되었다.

한전 입사와 재직의 희소가치는 예전 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듬직한 평생 직장으로 버팀목이 되어줬다.

공적으로는 열심히 일하는 터전으로, 사적으로는 먹고 살게 해준 터전이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고마워하고 있다.

 

가오동과 또 다른 깊은 인연이 있다.

청양 고향 지역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승진을 하여 대전으로 나왔을 때다.

지금도 여전히 있는 5층짜리 주공 아파트에서 제2의 고향이자 객지인 대전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청양 사택에서 사는 바람에 집 걱정을 안 하고 잘 먹고 잘 지내다가 막상 무주택자의 현실에 마주쳐서는 난감했었다.

대모님을 비롯한 청우회원님들께서 십시일반으로 전세금을 빌려줘 이사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대전에 살면서 또, 삼천포에 오가면서도 가끔 그쪽으로 돌아 오가면서 옛날을 회상하곤 했다.

그 유명하던 변전소도 작은 집이 됐다.

다른 곳에 많은 변전소가 들어서면서 규모가 줄어들고 그나마도 옥내화 변전소로 되어 전혀 옛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부터 정년퇴직하여 재취업한 지 십 년이 되는 지금까지 그리움은 여전하여 일편단심 민들레가 되어 있다.

 

가오동 일원, 다음 지도

주일에 청천벽력같은 언론 보도를 보고 가슴이 철렁하였다.

어디를 가더라도 정전이 되면 아이쿠 소리가 절로 나는 직업 정신 발로 그 이상이었다.

가오동 변전소에서 원인 모를 화재와 폭발이 발생하여 대형 정전사고가 발생했다는 보도였다.

정전으로 인한 사회적인 문제와 경제적인 손실이 크겠지만 어차피 일어나 불가피한 사고일 테니 절차에 따라 복구하면 될 것이다.

그보다는 설비를 건설하고 운용하는 후배님들 걱정이 컸다.

워낙 세월 차이가 있어 지금은 어느 후배님들이 책임자와 간부와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지 모른다.

업무 시스템이야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사고로 인하여 후배님들이 얼마나 고생할까 하는 생각이 앞섰다.

 

주일 미사 후에 남대전 요금소를 통한 삼천포 오는 길은 일부러 그쪽으로 지나쳤다.

도와줄 것은 없지만 맘으로라도 응원하고 격려하고 싶었다.

지나면서 보니 언뜻 밖으로 보이는 사고 현장이 처참했고, 복구 장비와 차량과 작업자들로 분주했다.

잘할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강한 믿음으로 빠른 복구가 되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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