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암
예수님의 사랑, 부처님의 자비, 공맹님의 예의를 헤아리고 실천함에는 때와 장소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든 생활화되어야 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약간의 제약과 장해는 있을 수가 있다.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다.
보다 더 효율적으로 그 가르침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때와 장소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는 측면도 있다.
태곳적부터 죽 이어진 시간이 존재한다.
그리고 거기에 성전이 있고, 사찰이 있고, 사당이 있다.
훗날인 지금에 보니 동사서성향묘(東寺西城鄕墓)다.
즉, 명당자리에 가보면 동양에는 절이 있고, 서양에는 성이 있고, 지역에는 묘가 있다.
명승지에 가보면 표가 난다.
그 옛날에 이 험준한 곳에 어떻게 절을 세우고, 수도원을 짓고, 묘를 썼는지 모르겠다는 감탄이 나온다.
그 모두가 당신들의 숭고한 가치를 따르고 실천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자 권리와 의무감에서 그런 좋은 자리를 잡은 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어제는 중간에 낀 휴일이었다.
대전에 안 올라가고 보리암에 다녀왔다.
몇 번 가보는 암자 형태의 작은 절이다.
다시 한 번 감탄했다.
보리암이 위치한 곳은 역시 한려수도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명당 중의 명당인 산악이다.
정통 불자는 아니다.
하지만 불자가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우리 모두다.
그렇다고 석가탄신일을 기리기 위하여 작심하고 보리암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누구 말마따나 빨간 날 같지 않은 빨간 날에 집에 그냥 머물러 있기도 뭣하고 해서 나들이 간다는 것이 삼천포 향촌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그 절을 가게 된 것이었다.
가뜩이나 등산에는 잠뱅이다.
무리를 해서는 안 되고 안정을 취해야 하는 며칠이다.
그래도 망설이기보다는 바로 행동에 옮기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어딘가를 돌다가 찾아간 것이다.
정상적인 일상이었다면 오가는 사람들로 빡빡했을 텐데 아니었다.
한산하다고까지 말할 수 없지만 많은 사람이 찾은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온 듯한 가벼운 옷차림과 수더분한 모습의 나들이객들이었다.
오르내리면서 보니 사람들이 각양각색이었다.
특히 배가 볼록한 남녀 뚱보들이나 엉덩이가 펑퍼짐한 여자들이 인상적이었다.
멀지 않은 오르막길 오르면서 긴 소매 옷과 너덜거리는 구두 차림으로 엉금엉금 기어가는 자신의 이상한 모습은 생각지 못하고 힘겨워하는 뚱보와 오천 평을 보고 안 보이게 속으로 웃었다.
“댁들 참 욕본다. 거기에다가 마스크까지 입에 테이프를 붙인 것처럼 하고 다니니 참 어렵겠다” 하면서 웃음이 나와 표정 관리하느라 욕봤다.
점심을 먹으러 간다는 것이 그것은 뒷전이었다.
가다가 산 길거리표 옥수수와 옥수수빵으로 허기를 달래고 상주 은빛 모래사장을 비롯한 그림처럼 펼쳐진 남해 섬 일주를 하는 식으로 귀가하였다.
끼니를 거르니 좀 허기지긴 했다.
참을 만했고, 참아야 했다.
중간중간에 그럴듯한 어(魚) 고기와 육(肉) 고깃집 간판이 많았지만 들어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오늘이라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참았다.
http://www.facebook.com/kimjyyfb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