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보리밥

Aphraates 2021. 7. 11. 05:39

아주 오래전이다.

중학교 시절인지 고등학교 시절인지 가물가물하다.

오래됐어도 기억은 생생하고, 그 의미는 변함이 없는지라 가끔 그를 인용하여 글을 쓰기도 한다.

 

이 건()이다.

미당 차부 뒤 누구네 집인가에서였다.

동네 형들과 동생들이 어우러져 마루턱에 앉아 한담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하루 몇 번뿐인 버스가 지나가자 S형이 공주와 대전 가는 차비 얘기를 했다.

다른 것에 비하면 차비가 엄청나게 싸다면서 차 없이 걸어서 공주나 대전을 간다고 생각해보라는 것이었다.

차비를 많이 내도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경제가 뭔지도 몰랐지만 뭔가 좀 이상했다.

차비 자체만 생각하면 맞는 것 같지만 다른 것과 함께 생각하면 틀리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은 비교적 적정한 가격이 매겨져 있다.

물물교환이든 뭐든 다 돈을 기준으로 하여 정해지는 데 그 하나만 똑 떼어내어 제일 중요하다고 하면 안 맞는 것 같았다.

 

보리밥, 다음

열변을 토하는 그 형을 바라보면서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럼 보리밥 한 그릇은 어떠냐고 물었다.

보리 씨앗을 구하고, 심고, 잘 자라도록 거름을 주고 물을 대고, 다 익으면 베어서 탈곡하고, 방아를 찧어 보리쌀을 만들고, 물을 붓고 불을 때서 보리밥을 짓고, 그를 상에 차려 고추장에 썩썩 비벼 먹는 많은 단계와 들어가는 공을 생각하면 보리밥 한 그릇은 차비처럼 싸 정도가 아니어서 몇백만 원은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기를 든 것이었다.

부드럽지만 갑작스러운 반격에 형은 멈칫했다.

헤비급 선수가 라이트급 주먹 한 대 얻어맞고 KO패한 것이었다.

그 형은 할 말을 잊었는지 말이 그렇다는 것이라며 얼버무리고 그 얘기는 더는 하지 않았다.

 

몇십 년 후 현직에 있을 때도 비슷한 일화가 있었다.

전기를 생산하는 화력과 원자력 발전단지가 충청도 서해안과 경상도 남동부 해안에 집중돼 있다.

전기 소비는 수도권에서 제일 많다.

수도권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운송로 즉, 송변전 설비가 필요하다.

자연스럽게 배들이 하얀 물결을 일며 항구로 몰려오듯이 거미줄 같은 송변전설비가 지방에서 경인 지역으로 이어졌다.

발전단지를 비롯하여 소비단지와의 중간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전력 설비 건설을 중단하거나 철거해달라고 아니면, 충분한 보상을 해달라며 극한투쟁의 민원이 빗발쳤다.

 

정부도 한전도 난감했다.

불만과 불편을 다 해결하려면 천문학적 그 이상으로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할 길이 없어서였다.

개인기업에서 그런 상황이라면 벌써 문을 닫았을 것이다.

점진적인 개선이 이루어졌다.

전력 설비를 우회 건설하기도 하고, 지중화도 시키고, 보상도 대폭 높이고 하였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은 듯하다.

후속타로 수도권의 전기 요금을 올리고 발전단지나 전력 설비 인근 지역은 전기 요금을 내려주자는 대안이 제시되고 일정 공감대를 이루어 부분적으로 그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전면적으로 확대할 수는 없었다.

논리대로라면 지방에서는 전기 1kWh100원의 전기 요금이라면 수도권은 500원을 받아도 적다고 할 수 있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하면 서울 영등포 양평동 H 제과에서 만드는 껌 한 통은 서울에서는 100원이지만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는 500원 이상 받아야 할 텐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되치기한 것이다.

더 할 말이 더 없어 결론 없이 흐지부지하게 논쟁을 끝내면서 다른 좋은 방안을 강구하자고 하였지만 글쎄다.

온리(Omly, 오로지)는 없다.

하나가 남으면 하나가 부족한 게 세상 이치다.

시중해야 한다.

잘 알고 임해야지 어설프거나 고집을 부리면서 아전인수나 탁상공론이 되면 곤란하다.

특히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

 

() 시장님이 원자력은 효율적이고 환경친화적인 에너지라고 했다.

전임의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반감에서 나온 정책 전환 차원인 것 같다.

전 같으면 지당하신 말씀입니다하면서 곧바로 통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환경론자들과 원전 반대론자들이 즉시 반발했다.

뭘 제대로 알고 이야기하라며 그렇게 좋으면 서울과 시장 집안에 원자력 발전소를 지으라고 되받아쳤다.

 

그거 참이다.

명확한 답이 없다.

왜 그런 문제가 튀어나오고 답을 내야 하는 곤혹스러운 처지가 됐는지 안타깝다.

논쟁이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겠다.

그럼 댁들은 서울에서 살지 말고 귀촌하라 할 것인지, 그렇다면 서울시장은 전기를 쓰지 말고 촛불 켜도 살라고 할지......,

정답은 온데간데없이 난타전의 논란과 상처뿐인 영광의 갈등만 증폭될 것 같은 예감이다.

어느 편이 팩트인지, 어느 편이 더 유식하거나 무식한지, 어느 편이 득을 보고 실을 볼지 차차 가려지겠지만 참 거시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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