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소고기가 맞나, 쇠고기가 맞나.
생각해봄 직한 문제다.
결론은 간단하다.
둘 다 표준어란다.
우리는 우리 말이니 아름답고 쉽다 하지만 하나를 놓고 여러 말로 표현 가능한 한글을 외국인들이 어렵다고 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소고기 사 묵겠지.
한 때 주가를 올리던 코미디 프로의 한 코너다.
그때를 생각해서 코미디 프로 팬이 되고 싶은데 프로가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고, 코미디언들은 각자 도생으로 다른 일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코미디 프로가 그렇게 사장된 데는 프로 주제가 빈약해서 그렇다는 데 좀 불만이다.
그런 거는 그 분야 전문가들이 알아서 발굴하고 피땀 어린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 스스로 포기하고 나가떨어지는 것은 장인정신의 결여가 아닌가 한다.
그런 논리라면 부단한 신상품을 개발하여 생존전략을 펼치고 성공해나가는 다른 분야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분발을 기대해본다.
미당 장에는 쇠전(소전)이 있었다.
장의 남측 가장자리인 지곡리 쪽에 있었다.
싸전(쌀전)도 있었다.
장의 북쪽 가장자리인 학교 쪽에 있었다.
옷전, 포목전, 잡화전 등은 장의 가운데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쇠전에는 잘 못 갔다.
농촌의 재산 목록 1호인 소를 거래하는 쇠전은 오가는 금액이 달랐고, 먹고 마시는 풍습이 달랐다.
비교적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그곳에 들려 국밥을 사 먹거나 막걸리를 사 마시곤 했지 끼닛거리도 마땅치 않을 정도로 뭐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은 쇠전에 얼씬도 못 했다.
쇠고기는 몇 년에 한 번 맛봤는지 기억에도 없다.
쇠고기는 고사하고 돼지고기도 제대로 한 번 못 먹고 그 세월을 지낸 농촌 사람들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구수한 쇠고깃국 냄새를 맞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그때 그 시절이었다.
한 많은 대동강처럼 한 맺힌 쇠고기였다.
반세기도 훌쩍 넘은 이야기인데 아직도 쇠고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전국 방방곡곡 어디를 가도 외양간이 즐비한데 그 많은 쇠고기는 다 어디로 갔다는 것인지 허리띠 풀어 놓고 한우 쇠고기 즐길 사람이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어렸을 적에는 쇠고깃국 냄새 맛는 것으로 족했다.
굴비 한 마리 천정에 달아 놓고 밥 한술 뜨고 쳐다보는 모습이나 다를 바 없었다.
밥술이나 먹고 살 때도 많이 나아지진 않았다.
지금도 금산 언저리를 다니다 보면 있더구먼 복수의 싼 쇠고깃집에 가서 숯불에 구워 먹는 쇠고기도 몇 달에 한 번꼴이었다.
수입 다변화가 되면서부터는 쇠고기 사정이 좀 나아졌다.
미국산이나 호주산을 수입하여 쇠고기가 대중화되다시피 했다.
한우만은 못해도 숙성만 잘 시키면 한우 못지않은 쇠고기를 즐길 수 있었고, 지금도 양극화된 부자들의 한우 쇠고기와 함께 서민들의 수입산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어제는 소맥 폭탄부대 작전을 오정동 육전(肉廛) 가에서 펼쳤다.
한때는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중산층이나 서민층이 찾던 곳이어서 호황이었으나 지금은 둬 집 정도가 명맥을 유지할 정도로 쇠락한 곳이다.
파랑새 장형(長兄)께서 거기에서의 추억과 작전을 언급하시어 한 번 가보기로 하고 의기투합하여 번개 작전을 한 것이었다.
작전 자체가 좋아 잘 먹긴 했는데 흡족하진 않았다.
음식 타박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값은 예상보다 저렴했다.
그러나 다른 것은 가성비가 낮았다.
입맛이 변한 것인지 아니면, 그만큼 수준 향상이 된 것인지 쇠고기, 반찬, 분위기, 서빙 등등이 옛것이 아니었다.
나이 들수록 호주머니는 약해진다.
그렇다 해도 한 번 먹더라도 제대로 먹어야 하는데 아쉽다.
고급스러운 것을 찾는 것도 아니고, 많이 먹는 것도 아니다.
치아도, 눈도, 소화도 시원치 않으니 되도록 그에 걸맞은 것을 찾아야 할 텐데 갈 곳도 배려해주는 곳도 마땅치 않다.
형편이 그런 것을 어쩌겠나.
좋은 부위로 쇠고기 한 근 떠다가 여유롭게 즐기는 것이 실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껴서 조금씩 비축해뒀다가 광시나 횡성으로 가 진짜배기 쇠고기 한 점 즐길 수도 있으니 희망을 잃어서도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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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