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든 해야 하는데
발전소 구내 식당 이용자가 제법 많다.
남자에 비하면 적지만 여자도 상당하다.
식사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한다.
다만 식사 시간을 발전본부, 제1발전소, 제2발전소, 협력업체, 외부인으로 구분해 놨다.
차별화가 아니다.
일시에 대거 몰리는 혼잡을 피하려는 조치인데 코로나 정국 이후로는 그게 더 강화됐다.
11시 조금 넘어서부터 13시까지(?) 배식을 한다.
식사는 칸막이를 한 4인 테이블에 둘이 대각선으로 마주 보고 한다.
더워도 춰도 모든 창문은 다 열어 환기하는 것이 기본이다.
식당은 제법 널찍하다.
식탁도 많다.
그래도 방역수칙 준수 때문에 일행들과 옹기종기 모여 식사하는 것은 금지다.
오히려 빈 자리를 찾다 보면 생판 모르는 사람과 마주하여 식사할 때가 더 많다.
여자와 겸상을 할 때도 있다.
서로가 조금은 어색하고 쑥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
구내 식당을 이용하는 여자는 대개 네 부류로 분류할 수 있다.
먼저, 회색 작업복 상의에 발전소 마크가 들어가 있는 여직원들이 있다.
명찰을 보면 직위를 알 수 있다.
아무 표시가 없으면 직원이다.
그중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과 인턴사원도 있을 것이고, 사무직과 기술직과 기능직도 있을 것이고, 정기적으로 계약을 연장해서 계속 근무하는 기간제 직원들도 있을 것이다.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부처장, 처장이란 직급 표시가 있으면 간부다.
다음, 회사 마크가 있는 작업복이나 평상복 차림을 한 협력업체와 시공시와 감리사 등등에 속한 여성 근로자들이 있다.
그다음으로, 신호수나 안내요원들처럼 인력 수급업체에 속하여 일당으로 들어오는 빛바랜 조끼를 입은 여성 근로자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발전소나 공사 현장 업무차 들어 온 말쑥한 정장이나 작업복 차림의 외부인 방문객들이 있다.
식사하는 모습도 다양하다.
간단한 점심 한 끼니이니 비슷하지만 약간의 차이는 난다.
어떤 식사람인 알려거나 힐끗힐끗 쳐다보지 않아도 감이 잡힌다.
밥 한 숟가락만큼 갖고 와서 먹기 싫은 거 억지로 먹는 듯이 찌적거리다가 힘없는 발걸음으로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봉밥도 모자란다는 듯이 밥사발 수북이 퍼 와 빠른 속도로 맛있게 먹고 흐뭇해서 밝게 웃으며 나가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 중간도 있다.
외모와 함께 식사 태도에서 대충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외양만 보고 직업의 귀천과 수입 정도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먼지를 들써 쓰고 일하는 여성이 가지런한 머리의 여성보다 몇 배의 돈을 받는 인재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어쨌든 식당에서 만나는 여성들은 복 받은 것이다.
즐겁든 괴롭든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여유가 있어서이거나 할 일이 없어서이거나 전업주부로 머무는 것에 비하며 선택받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발전소 구냐 식당의 풍경이다.
밥 먹으면서 여성을 바라본 소감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일하는 여성들의 애환을 되돌아보려는 것이다.
일단 여성들은 독하다는 생각이다.
남성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취업하기가 힘들다.
뭐든 해야 하는데 마땅칠 않다.
경제적으로 보나, 자기 계발로 보나, 사회 참여 면으로 보나 무슨 일이든 해야 하는데 맞질 않는다.
지금 공장이나 농장이나 어디든 일할 사람이 부족한 데다가 코로나로 인하여 외국인 근로자들까지 보기 힘든 판에 일하고자 하면 어디든 갈 수 있는데 뭘 그렇게 가리느냐고 한다면 곤란하다.
충분한 역량과 상품 가치를 갖고 있는데 그는 무시하고 합당한 대우도 없이 아무 일이나 하라고 한다면 일자리가 있다고 해서 얼싸 좋다 하고 찾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정규직이니 비정규직이니 하는 구별은 서구화되어 가는 취업 시스템 때문에 수긍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인정과 대우를 해줘야 한다.
털도 안 벗기고 날로 먹겠다는 심보로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든 말든 맘대로 하라며 배짱을 부린다면 안 맞는다.
<많아야 서른, 벌써 세차례 이직…쌍팔년도 직장에 좌절한 그녀들> 라는 타이틀의 기사가 맘에 와 닿는다.
현재의 불만을 쌍팔년도 세대 축인 미당 선생 정도가 공감한다는 것은 그런 모습을 많이 보고 실제로 경험하고 있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우리 근대사를 쓴 억척이와 또순이를 소환할 것도 없다.
선거철이 아니어도 시정될 것은 돼야 한다.
갈등과 분란이 조속히 해소되기는 어려울지라도 해야 한다.
전문직이 아니고서는 최저임금을 따져야 하는 여성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이 어려운 시국에 일할 수 있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라고 한다면 또, 지금처럼 여권 신장이 됐으면 됐지 얼마나 더 좋아지자고 그러느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게 아니다.
단기적으로 어떨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보면 패착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인구절벽인 상황에서 남녀평등이 공고화되고 있는 것을 잘 발전시켜 모두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되게 해야지 남자는 외조에 여자는 내조라는 식으로 나간다면 더욱더 어려워질 것이다.
월(月)로는 연말을 향하고, 주(週)로는 주초이다.
물 내려가는 소리가 약하게 들리는 것이 추위를 재촉하는 겨울비가 내리는 것 같다.
오늘 하루도 힘찬 발걸음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혼밥일지 낯 서른 사람과 겸상일지 모르지만 푸짐한 점심으로 인사치레하듯이 하는 간단한 아침을 보충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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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