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Aphraates 2021. 12. 12. 07:08

생년월일은요.

출신지는요.

신장과 체중은요.

최종학력은요.

병역은요.

결혼은요.

자격증과 경력은요.

장차 희망은요.

 

이런 물음은 어떤 면접시험에서든 나오던 질문이었다.

특히, 취업 면접시험에서는 필수적인 통과의례였다.

면접관은 같은 솥 밥을 먹으려면 신상을 상세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었고, 응시생은 밥값을 제대로 하려면 본인 상품이 이렇다고 자세하게 알릴 의무가 있었다.

묻는 측이나 답하는 사람이나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자연스럽게 문답했다.

 

지금은 그런 면접시험이 아니다.

구식을 답습했다가는 큰일 난다.

옛날 방식으로 하면 크게 실수하는 것이다.

안 먹힌다.

당장 차별 금지법인가 뭔가 하는 법으로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성폭력으로 몰릴 수도 있다.

 

지금은 블라인드 면접이 대세다.

아버지가 면접관이고 아들이 수험생이 아닌 이상 누구인지 알 수 없게 하여 공명정대하게 시험을 치르겠다는 취지다.

출신성분 같은 것 등등 외적인 것들은 일절 안 따지고 오로지 인물과 실력을 평가하여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블라인드 면접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도 한다.

하나 잘 모르겠다.

인물과 실력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고, 세상이 아무리 발달해도 급하면 각종 도사가 등판한다.

그를 비과학적이고 심신 허약이라고 매도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블라인드 면접 같은 좋은 제도가 잘 활용됐으면 한다.

새로운 제도가 정착하려면 많은 시행착오와 연습이 필요할 테니 그런 것에 조절하는 일이 없어야겠다.

 

미당 선생은 산전수전에 지전과 공전까지 두루 겪은 복합 세대다.

전쟁 세대, 반공 세대, 가부장적 권위주의 세대, 엘리트적 개발 세대, 반항의 민주화 세대, 미래를 향한 선진화 세대, 실사구시의 첨단 고도산업 세대로 이어져 온 세대로 졸() , 학력 문제에 걸려 있었다.

자기 세대가 어려웠다고 하는 것은 고대인이나 현대인이나 마찬가지라니 생사의 기로에 선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 것은 없다.

 

그러나 졸에 대한 콤플렉스와 트라우마가 있다.

유복하게 태어나고 자라 졸의 아픔과 서러움을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르겠지만 박복하여 그를 뼈저리게 겪어본 사람은 피눈물 나는 것이다.

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하고 많은 성과도 내지만 아직도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을 테니 졸 문제는 영원할 거라는 추측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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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문제가 없을 수 없다.

신라 시대에는 성골과 진골의 골품 제도가 있었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문관과 무관, 사농공상으로 대변되는 신분제도가 있었다.

현대는 결이 다르지만 졸 문제와 결부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힘이 없거나, 아는 것이 없거나, 가진 것이 없는 약자로서는 숙명적으로 감내해야 하는 차별이 엄연히 존재한다.

또 그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너무 비약하는 것이 아닌가.

반의반에 밖에 중학교에 못 가던 시절에 공주(중학교)로 해서 대전(고등학교)까지 유학한 것만도 복 받은 것인데 무슨 헛소리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국민학교와 중학교 시절에는 청양 촌놈이라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실업계 학생이라고, 대학 시절에는 야간대학생이라고, 대학원 때는 기본이 약한 학사 출신이라고 밀려나곤 했다.

어디를 가도 발목을 잡는 졸 문제가 서러워 마침 학력을 권장하고 우대하던 YS 시절에 석사까지 하고는 박사 과정을 밟을까 하다가 말았으나 그런 일련의 과정 자체가 고졸이라는 이름표를 감추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졸이 다는 아니다.

예수님이 어느 학교를 졸업하셨는가.

부처님과 소크라테스 님과 공자 님이 어디까지 학교에 다니셨는가.

불분명해도 다 성인으로 추앙받는데 졸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닌듯싶다.

그러나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졸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졸이 높은 사람들의 여유 있는 이야기이지 낮은 사람들에게는 가슴에 맺힌 것이 많다.

졸이 약해도 불굴의 의지로 임하고 출세하여 졸이 강한 것 부럽지 않게 개천에서 용이 났다는 소리를 듣는 예도 있다.

하지만 그는 특이한 경우다.

졸 때문에 눈물 흘려본 사람들의 심정은 안 당해본 사람들은 모른다.

그 눈물은 영광스러운 훈장이기도 하고, 아픈 상처이기도 한 것이다.

 

대선판에도 졸이 등장했다.

예민한 문제라서 자칫 잘못하면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지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 같은데 졸 문제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켰다.

강남좌파나 강북우파라는 문제와도 엇비슷하다.

졸 이야기라면 할 말이 별로 없는 비기득권층의 흙수저가 기득권층으로 되어 칼자루를 잡은 입장에 있다.

졸 이야기라면 할 말이 많은 기득권 출신 금수저가 흙수저 그룹의 금수저가 됐다가 다시 흙수저로 돌아와 칼날을 잡은 입장이 됐다.

졸 문제가 어느 편으로 유리하게 작용하고 어느 편으로 불리하게 작용할지 모르겠지만 어떤 프레임으로 귀결되든 소중한 경험보다는 아픈 추억으로 남기게 하는 우는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네가 내가 박사하는데 도와준 것이 없듯이 네가 내가 무학하는데 훼방 놓은 것도 없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나름대로 잘 살면 되는 것인데 그런 구태의연한 졸 문제를 놓고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은 시류에 맞지 않은 것 같다.

 

12.12.

43년이 됐다.

당시에는 무슨 상황인지 잘 몰랐다.

얼만가 지나서 조금씩 알게 됐다.

공주 영명 학교 출신 보안대 이() 상사가 한남동 공관으로 찾아가 경상도 출신 별 4개 정() 참모총장을 총 개머리판으로 제압했다는 뉴스를 나중에 접하고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멍청하게 하늘만 바라보던 사양변전소에서의 신입사원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난다.

아직도 평가가 엇갈리는 그 날이고, 그 연장 선상에 서 있는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인지도 언젠가는 평가를 받아야 할 텐데 후손들이 뭐라 할지……. 생각하면 복잡하여 머리 빠지니 그러지 말자는 생각으로 오늘 하루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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