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자
제주도로 건너간 박(朴) 대자(代子) 님이 SNS와 전화를 통하여 종종 소식을 전해온다.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가야 할 길을 잘 이끌어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기도 하고, 좋은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하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생경하던 컴퓨터를 청양 칠갑산(七甲山) 시대의 1980년대 초부터 잘하여 신통방통하다는 소리를 듣던 대자님이었다.
그 끼와 꿈을 잘 살린 쟁이 꾼이 되었다면 지금쯤은 대단했을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대박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막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는 네이버, 카카오, 넷플러스 같은 세계적으로도 앞서가는 쟁쟁한 인재와 명사가 되었을 텐데 그저 취미로 끝난 것이 영 아쉼다.
이십 년 전의 대부를 그대로 닮아가는 것도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도 사정이 비슷한데 이상과 현실을 접목시키기에는 더 성숙해야 하는 품질 안전 분야에 종사하면서 성과를 내는 것이 그것이다.
평생 전기인으로 살면서도 애정을 갖지 못하는 이공계 전기 분야다.
그래도 적성이 어느 정도 통하는 그 품질 안전 분야에서 국내외로 동분서주하던 것이 미당 선생의 2000년대 초였다.
성과도 있었고, 과오도 있었지만, 애정을 갖고 임했던 품질 안전 분야이고 일정 부분 일가견을 갖기도 했으나 미완의 작품은 여전했다.
개인적인 능력과 한계에 부딪혔고, 국가 사회적으로도 그를 체계적으로 적용하기에는 제약이 있어 열심히 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결국은 퇴직 후에 우연한 기회에 다시 그 분야 전문가 그룹원으로 재등장하여 또 다른 삶을 역동적으로 살고 있어 고맙기도 한데 너무 늦은 세월이어서 안타까움이 있다.
대전 용전동에서 품질 안전으로 동고동락하던 후배님들도 흘러간 물과 흐르는 물로 나뉜다.
한(韓)과 이(李) 후배님은 벌써 OB가 되었고, 김(金)과 민(閔) 후배님은 아직 YB로 제작 중이다.
언제 어디를 가든 건강하고 보람찬 개인 생활과 조직 생활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번 만나 회포를 풀고도 싶지만 잘 안 되어 계속 미루기만 하는데 코로나라는 핑곗거리가 생겨 기다림의 시간이 더 길어질 것 같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니 격세지감이고 감개무량이다.
중견 사원으로 가방을 들고 오가는 초급 사원들을 맞이하고 보내던 청양 고을에서의 날들이 그립다.
전향적이고 배포가 크다는 소리와 함께 걱정의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대전전력 품질 안전 유공자 동료 30(?)여 명을 인솔하여 한라산 현지 교육 극기 프로그램을 했던 날들도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미당 선생은 정년퇴임한 지 십 년이 됐고, 전출입하던 후배님들도 정년을 준비하고 있어 말 그대로 싹 물갈이가 돼 가는 친정집이지만 관심과 사랑은 현실적으로나 이상적으로나 짝사랑 그 이상이다.
http://www.facebook.com/kimjyyfb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