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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나비, 1965년

Aphraates 2022. 7. 5. 12:30

공주 중동 차부 뒤 경찰관이던 사촌 형님댁에서 하숙을 하던 공주 유학 시절 때다.

그러니까 1966년 3월이다.

학교에서 파하고 오면 엄마도 보고 싶고,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도 되고 하여 하숙방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공부는 다음 문제였다.

그럴 때마다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있는 교동쪽에 있는 공주 극장 앞에 가곤했다.

 

영회를 보러 간 것이 아니다.

영화관에 들어갈 돈도 없었을뿐더라 학생들 극장 출입은 금지돼 있었다.

 

거기에는 돌말에서 이사나온 한상준(?) 네 집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군에 가서 돌아가셨던가 한 원호 가족이었는데 어머니가 작은 구멍가게를 하시었다.

상준이는 형과 함께 봉황중학교(?)엔가 다녔고 나중에는 공주농고를 다녔을 것이다.

그 때 당시 공주 농고에 누에꼬치를 다루는 잠사과라고 해서 여핵생들을 처음 뽑았는데  공주에서 깜좀 씹고 침좀 뱉던 공주여중을 나온 미당의 여기자가 그 학교로 가 머리 휘날리며 금강교를 걸어다니는 것을 몇 번 본적이 있다.

하여거나 지금 어디에서 어찌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보고 싶은 친구들이다.

 

여기 이 노래 불나비는 그 때 그 시절과 다 끈이 닿아있다.

바다 고동을 연탄불에 올려 놓고 김이 모락모락나게 데쳐서 파는 상준네서 놀 때 공주 극장 스피커를 통해 그 노래가 구슬프게 들려오곤 했다.

특히 비오는 날에는 더 외롭고 서글프게 들렸다.

그 노래만이 아니라 여러 노래를 틀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노래는 생각이 잘 안 난다..

그 노래가 아직도 와 닿는 것은  웃기게 생긴 김상국 가수가 웃기는 노래를 하는데 무슨  슬픈 사연이 있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중에 청양에서 또는 대전에서 가끔 노래 방에 갈 때는 데보라가 꼭 부르기도 한 노래이기도 한데 지금 들어봐도 뭔가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것처럼 구슬프게 들린다.

 

 

불나비/김상국/196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