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남영동

Aphraates 2022. 8. 11. 06:18

1974년이다.

논산 육군 훈련소 23연대에서 전반기 교육을 마치고 수용연대 배출대대를 통하여 자대 배치를 받았다.

작대기 하나 달고 연무대역에서 밖이 전혀 안 보이게 밀봉된 열차를 타고 밤샘 이동하다가 도착했다고 해서 새벽녘에 하차해보니 동두천역이었다.

 

내심 불안했다.

최전방이구나.

우리는 죽었다.

그런 두려움에 바짝 긴장하여 줄지어 오는 포장친 군 트럭을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보니 갈수록 태산이 아니라 첩첩산중이었다.

달리고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여 내리고 보니 거기가 감악산 자락 아래 28사단 보충 교육대였다.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후반기 교육이 진행됐다.

작업 훈련 기간도 있었다.

봉암리 사단 사령부 테니스장 건설 작업에 동원되기도 했다.

사회에서 일은 많이 안 해봤지만 엄격한 교육장에서 박박 기는 훈련보다는 일하는 것이 훨씬 좋아 계속 일이나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본부 대대 앞의 야전 막사에서 사단장님이 하사하신 통닭 백숙을 반쪽씩 먹으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하는 홍수환 선수의 감격스러운 목소리에 다 같이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세게 복싱 챔피언 기념으로 나머지 닭 반쪽이라도 준다면 감사의 절을 수십 번 했을 텐데 살점 하나 안 붙은 뼈를 쪽쪽 빠는 것이 다였다.

 

헝그리 복서 홍 선수는 그렇고!

동료 중에 김() JT라는 이등병이 있었다.

서울 명문대인 종암동 K 대를 다니다가 입대했다고 했다.

작은 체구에 얼굴이 까무잡잡한 것이 별 볼품은 안 났으나 다른 동료들과 잘 어울리는 편한 동료였다.

그런데 하루는 점심시간이 지나 작업을 하고 있는데 사단장 비서실인가 부관부가 하는 데서 왔다는 기간병이 우리 중대장을 찾더니 그 김 이등병을 불러 데리고 급히 어디론가 갔다.

무슨 일인지 몰랐지만 별 관심들이 없이 작업에 임했다.

한 뒤 시간인가 있다가 돌아왔다.

쉬는 시간에 훈련병 동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며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기 친형이 공군 소령(?)으로 보안대에 근무하는데 근처 부대에 업무차 왔다가 자기를 보러 왔다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K대생에 형은 보안대 고급 장교라니 어찌 보면 가까이하기에는 버거운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사단에 파견된 보안대장이 실제 계급인지 아니면 위장 계급인 모르지만 중령으로서 사단장과 맞먹는다고 했다.

그런데 동료 형이 육군보다는 한 수 위라고 하던 공군의 보안대 소령이라니 안 놀라면 강심장이다.

 

큰일 없이 후반기 훈련을 마치고 다시 자대 배치를 받는데 K는 타자도 잘 치고 해서 사단 사령부 경리단(?)인가 하는 곳에 배치받았다.

다들 부러워했다.

당시만 해도 훈련병 1개 중대 150여 명 병력에서 대학에 다니거나 다닌 병사는 열 손가락 안에 들었다.

그러니 명문대 출신에 좋은 집안의 K가 끝발없는 촌놈들은 상상도 못 하는 자리에 배치받았으니 놀랄 일이 아니라 부럽고 부러운 일이었다.

 

나중에 가려졌던 비화도 알려졌다.

K는 운동권 학생으로 시위를 하다가 강제로 군에 입대하였고, 문제 사병으로 특별 관리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군에 들어와서 말썽을 안 부리고 군 생활을 마쳤기에 다행이었다.

만약에 군 내부에서도 시위 주동자로 암약하였다면 주변 여러 사람 물고를 치를 뻔했다는 안도의 한숨들도 나왔다.

 

그때 그 시절에는 그런 일도 있었다.

그 뒤로 연희동 양반 시대에는 대학생 데모에 대해서 더욱더 면밀하고 가혹했게 대했다는 소리도 있었는데 미당 선생은 그 당시 사명감과 소명감을 불태워야 하는 공기업 직원으로 들어왔을 때니 생각하는 것조차도 부질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몇 년 만인가.

무시무시한 남영동이 재등장했다.

모두가 아프다.

아픈 기억을 잊고 이제 숨 좀 돌리는 판인데 40년 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 괴롭다.

수구파와 개화파가 쌈하는 대원군 시대도 아니고......,

정신없이 미래로 나아가도 부족할 판에 왜 자꾸 과거로 되돌아가는 일들이 잦은지 뭔가는 아귀가 잘 안 맞는다.

<밀고 의혹에 색깔론 응수, OOO'경찰국장'이란?> 기사가 실렸다.

침투망원이라는 새로운 말도 등장했다.

나름대로 한자 표기로 해보면 浸透望員(침투망원) , 침투하여 망보는 사람이라는 뜻인 것 같은데 뭘 의미하는지 대번에 떠오른다.

그리운 그때 그 시절이 아니라 괴로운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여 숙연해진다.

 

좋은 기억보다는 안 좋은 기억의 선입감이 있는 남영동이다.

이름만 나와도 곤혹스럽고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상전벽해 식으로 변했을 테지만 그보다 훨씬 앞선 일제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듯이 남영동의 아픈 흔적은 잘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남영동은 지금 어떤 동네로 자리매김했을까.

지도 검색을 해봤다.

미당 선생이 가구 외판원으로 주경야독하던 미8군 앞 남영동 가구 거리 건너편이고, 숙명여대 쪽으로 남영역 인근이었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쳤더니 민주인권 기념관으로 검색이 되었다.

2023년에 오픈한다는 주역이 달린 것으로 봐 독재에서 민주로 변모하고 있는가보다.

남영동은 서울역 알고, 삼각지 위이고, 부자 동네라고 하던 후암동 아래이기도 하다.

한강 변은 아니고 남산 자락 쪽인데 이번 폭우에 피해는 없었는지, 남영동이란 지명 자체가 대공분실과 오버랲되어 상징하는 바가 큰데 아파트 가격에 호재인지 악재인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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