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갓난 엄니께선 떡을 참 좋아하셨다.
그 것도 시루떡, 인절미, 흰떡 같이 단순한 옛날 떡이었다.
밀가루로 만든 국수나, 가마솥에 늘어붙은 누룽지나, 알맹이보다는 물이 많은 죽 같은 것은 식구들한테 내 놓을 끼니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던 엄니께서 찰떡이나 메떡 유를 좋아하신 것은 별스런 것이 아니었다.
옛날 분이니 옛날 떡을 좋아하신 것이야 당연할 텐데 왜 그렇게 떡을 좋아하셨는지를 생각해보면 엄니 맘을 이해할 수 있다.
자식들을 배불리 먹이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래서 생일, 명절, 추수 때에는 다른 것은 몰라도 떡은 넉넉하게 하여 수북이 담아 자식들한테 밀어내셨고, 이웃이나 지나가는 사람들한테도 푸짐하게 주시곤 했다.
물론 아버지께서 장사를 하시고 남의 손을 빌어 농사를 지으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당시만 해도 흔치않은 떡을 해서 나눠 먹을 수 있었지만 떡하는 것을 소홀하지 않으셨다.
곳간 열쇠를 큰 며느리한테 내주시고도 그것은 여전했다.
우리들이 알아서 할 테니 제발 그러시지 말라고 성화를 하여도 안 통하는 벽창호 할머니이셨다.
못하게 하면 어느 새 머리에 쌀을 이고 방앗간으로 가시어 다들 항복하고는 자식들이나 며느리들이 받아서 갖고 가기도 했다.
그런데 고전부전(姑傳婦傳)인가 보다.
대전의 막내며느리도 그런다.
무슨 일만 있으면 떡을 해낸다.
막내 동서가 그런 걸 아시는 형수님들도 명절이아 생일 때 같으면 떡을 잔뜩 하여 나눠 먹으라며 차에 실어주신다.
지난 봄 쑥이 돋아날 때 쑥 캐러 무주(戊朱) 적상산 옆의 요한 대자 농가에 갔었다.
갖가지 약을 많이 하기 때문에 아무데서나 쑥을 뜯을 수 없지만 그 곳은 고지대에 청정지역이라서 맘 놓고 쑥을 몇 자루 캐왔다.
그를 깨끗하게 손질하고 삶아 몇 뭉텅이로 냉동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 꺼내 떡을 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 절정이었다.
성탄 며칠 전이 서방님 생일이어서 생일 떡으로 만들었다.
주인공이 안 어울리게 포터를 하면서 눈여겨보니 미당 큰집에서 주신 쌀 20kg 한 포, 냉동 쑥 2kg짜리 4개, 떡만드는 공전 OO, 떡집으로 찾아가 실고 온 떡 상자가 8개, 나눈 곳이 성당 신부님과 수녀님과 구역 성탄제 리허설 장 등 적어도 열 군데는 넘는 것 같았다.
떡장사에 떡 배달부도 아니고......,
그래도 일하는데 말 시키지 말라며 주방에 죽 늘어놓고 입을 쫑긋거려가면서 떡을 포장하는 모습이 싫지 않았다.
할 만하니까 하는 것이지만 우리 둘이 먹어봐야 절편과 흰떡 몇 조각이면 그만인 것을 얼마나 크게 일을 벌여 척척 해내는 것인지 우습기도 했다.
적지 않은 떡을 해대느라고 푸닥거리 한 번 제대로 했다.
차에 실려 있는 것은 내일 미사 가서 전해드리면 되고, 남쪽 마을 통영 댁한테는 다음 주에 다른 것 보낼 때 함께 보내면 되니 우선 떡장사는 일단락된 것이다.
다음에는 어떤 떡장사로 나설지 그 때 가봐야 알 것이다.
어떤 떡장사이든 싱글벙글하는 장사이니 마다할 일이 아니다.
밤잠 설치게 하던 현장 투입 인터뷰, 갓난 엄니와 구만 아버지 기일, 미당 선생 귀빠진 날 사전 행사, 성탄 판공성사와 성탄제 리허설, 518 “영웅” 관람 및 재회 약속에 오늘 청출회 대전 쫄들의 송년회를 끝으로 한 주일이 마무리된다.
다음 주와 그 다음주에는 더 바쁜 일들이 있을 것이다.
벌써부터 묵직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무거운 짐 진 수고하는 자들이라는 당신의 부르심이라면 엉동설한일지라도 기꺼이 맨발로 나서야 하고, 그럴 각오가 되어 있으니 얼마든지 가볍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떡 사세요” 라는 대사의 장(張) 배우의 옛 모습을 떠 올리며 오늘을 연다.
중무장하고 체력인증 1급을 유지하기 위한 운동을 해야 할 텐데 풀렸다는 날씨가 아직도 –7℃니 그를 핑계 삼아 베란다 간이 운동으로 시작한다.
http://www.facebook.com/kimjyyfb
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