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대가리가 없었다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다.
특히 공사 현장은 비가 오면 올스톱이다.
일기 불순일 때는 작업을 금지한다는 법과 규정을 지키는 차원이기도 하나 작업자들 처지에서도 안전사고가 우려되고 작업 능률이 안 오르기 때문에 내일을 위하여 오늘을 참는 것이다.
남원 현장도 비 오는 날이라서 멈췄다.
우렁차게 울리던 중장비 소리도 멈추고, 분주하게 움직이던 관리자들의 발걸음도 뜸했다.
오로지 준동하여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는 것이 있었으니 지리산 자락을 끼고 도는 운무였다.
그도 자주 보거나 접하며 지루할 테지만 그러기가 얼마 안 된 지라 텅 빈 공사 현장에서 운무로 휘감기는 먼 산을 바라보니 운치가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각 분야 현장 소장님들께서 다가오시어 무슨 일 있는가 싶어 궁금해하셨다.
그게 아니라 사무실 준비 작업을 대충 마무리하고 나니 홀가분해서 나와 여유를 갖는 것이라 했다.
급한 일이 없으면 들어들 가시지 뭘 다 하실 일들이 있냐고 하였더니 관리자들은 대부분 퇴근하고 일부만 남아서 마무리하고 있다면서 단장님도 들어가시지 왜 그러냐고 하셨다.
혹시 몰라서 다음 주 일을 구상하면서 급한 것부터 하나씩 준비하고 있는데 필요한 기구를 살 것이 있어 좀 일찍 나가볼까 한다 했다.
점심때 먹은 간짜장이 속을 든든한 것을 넘어 더부룩했다.
닭곰탕, 갈비탕, 기사식당 백반, 청국장에 이어 간짜장으로 떠돌이 점심 꾼 메뉴가 대충 정해진 것 같은데 오래 갈 것 같진 않다.
집밥 식으로 하는 함바가 좋은데 그런 집이 없으니 현장 인근을 시작으로 좀 더 넓게 외곽 확장을 하여 메뉴 개발을 해야 할 텐데 그렇게 여유있이 움직일 몸과 맘이 못 되는지라 아무래도 그때그때 닥치는 대로 해결해야 하는 입과 속이 양보해야 할 것 같다.
퇴근하여 남원 명품인 목기(木器) 단지를 둘러보았다.
도통동 집에서 광한루 앞 다리를 건너가야 하는 6km 길이었다.
생각해둔 것이 있어 마땅한 것이 있으며 구매하려고 갔는데 단지 전체가 활력이 없이 썰렁했다.
전시 판매장은 불도 안 켜고 어두운 채로 문만 삐끗 열려있었다.
오래전에는 무척 번성했고, 목기 하면 남원인지라 인지도도 높은데 왜 이렇게 차에서 내리기 미안할 정도로 한산한 것인지 코로나나 경기 불황을 감안해도 이것은 아닌데 하는 생각에 맘이 아팠다.
되돌아 나오면서 운봉 쪽에도 목기 단지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어 네비를 찍었더니 20km 길이었다.
기완 나선 길이니 한번 가보자면서 네비 아가씨가 일러주는 대로 처음 가는 길을 가다 보니 결국은 작업장인 신남원 변전소 앞 준령(峻嶺)을 넘는 길이었다.
고게 입구에 북극곰도 넘어져 울고 간다는 재미난 도로 위험 안내판이 눈길을 끌었다.
운봉(雲峯)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안개가 어찌나 짙은지 초저녁같이 어둠침침했다.
운봉읍 입구에 있는 운봉 목기 단지도 한산했다.
들려서 한 바퀴 돌아볼 상황이 아니었다.
다음 기회에 한 번 다 와보자 하고는 어차피 나선 길이니 정령치(鄭嶺峙)나 한번 가보자고 네비를 찍었더니 그리 멀지 않았다.
한산한 길을 달려 정령치 입구에 들어서니 언제부터 언제까지인가 명확지 않지만 지리산 입산을 금지한다는 안내판과 함께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었다.
그런 꿩 대신 닭이라며 육모정(六茅亭)으로 향했다.
입구에 처져 있던 바리케이드가 치워진 채로 있어 가도 되는가 보다 하고 저속 기어를 넣고 천천히 내려가는데 그게 오판이었다.
내려가는 깊은 계곡 위의 길 곳곳이 얼어 있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설설 기었다.
어쩌다 보이는 내려가는 차는 베스트 드라이버인지 추월을 잘도 하여 지나쳤고, 굉음을 내면서 올라오는 스포츠카 군단은 폭주족인지 쌩쌩 잘도 올라왔다.
간신히 내려와 육모정과 춘향묘 앞 지리산 관리사무소 입구에서 보니 출입을 통제한다는 네온사인 입간판이 서 있었다.
종합적으로 판단해볼 육모정을 거쳐 올라가는 지리산 길도 출입 통제 상태인데 누군가가 쳐 놓은 바리케이드를 치워 운행한 것이고, 미당 선생 부부는 그것도 모르고 초행길이나 마찬가지아자 군데군데 얼어붙은 위험천만한 길을 내려온 것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겁대가리도 없었다.
무사히 내려왔다는 안도감도 잠시였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헤헤거리며 요란하게 소리를 내리며 흘러내리는 지리산 꼭 물을 바라보면서 사진도 찍었다.
해상 국립공원 한려수도나 다도해만은 못해도 1호 육상 국립공원 지리산 자락 남원도 돌아보고 즐길 것이 많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년여 동안 대전에 못 올라가는 주도 상당할 텐데 그때는 지리산 남원을 거점으로 하여 서해안과 남해안도 재섭렵하면 좋을 것이다.
지리산 길, 겁대가리가 없었다.
그에 신경 쓰고, 보고서 작성에 둬 시간 몰입하다 보니 더부룩하던 배가 꺼지고 출출했다.
점심 간짜장을 먹으면서 저녁에는 밥 먹지 말고 간짜장 안주와 소화제로 독한 배갈 한독고리 해야겠다는 농담을 나눴는데 그게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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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