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가랑비에

Aphraates 2023. 10. 3. 02:29

가랑비에 옷 젖는다.

그를 무시하거나 간과한다가는 큰코다친다.

티끌모아 태산이고(적진성산,積塵成山)이고, 노끈으로 나무를 자르고, 물방울로 바위를 뚫는다(승거목단 수적석천,繩鋸木斷 水滴石穿)이라고 했다.

나는 괜찮겠지, 나는 아니겠지 하고 무사태평하다가는 자만과 오만으로부터 이어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으니 때로는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조심성이 필요하다.

 

명절이라고 해야 술 한 잔 못했다.

여기저기 바쁘게 이동하다보니 그럴 겨를이 없었다.

30년 넘게 지켜온 술 한 방울만 마셔도 운전은 안 한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은 지켜야 한다는 하나의 생활로 굳어졌다.

그렇다면 넉넉한 한가위에 미당이 주당이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제는 해지기 전에 시작하여 클로징 타임까지 이어진 남원 팀의 사리원 돼지갈비 작전이었고, 어제는 정오에 만나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진행된 무주구천동에서 공수해온 쏘가리 매운탕 소맥폭탄부대 작전이 있었다.

허리띠 풀어 놓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있는 술 없는 술 다 닥닥 긁어내는 화기애애한 자리였다.

며칠 동안 수절한 절제의 한을 풀어내는 것이 아니고, 주당 행세를 안 하면 온몸이 비틀어지는 주책도 아니었다.

한 마디로 분위기였다.

경제는 분위기라는 말과도 통하는 것이다.

 

연속되는 이틀의 노고 때문인지 골아 떨어져 자고 일어났더니 새벽 한 시로 개천절을 맞이하였다.

데보라는 잠을 안 잤는지 아니면, 자다가 깼는지 모르지만 거실에서 부추를 다듬고 마늘을 까는지 달그락거리고 있다.

좀 죄송하다.

단군 할아버지께 감사드리는 차원에서 일찍 일어나 목욕재개하고 맞이하는 새벽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해 일말의 미안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백의의 민족이자 배달의 민족 후손 역할을 조금 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핑계로 위안 삼는다.

그래도 그러다가는 가랑비에, 물방울에, 노끈에 당하는 옷, 바위, 나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그러지 말라고 자책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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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