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팔이마
어제 대전에서의 주말은 호팔이마(好八二魔)였다.
그 정도면 준순하다 하겠다.
퍼펙트게임(Perfect Game, 완봉승/완투승)이나 콜드게임(Called Game, 몰수게임)으로 이기면 더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너무 그러면 재미없다.
역으로 다칠 수도 있다.
그러나 10점 만점에 8점을 득점하고 2점을 실점한다면 이긴 게임이자 성공한 작품이다.
호팔이마는 이렇다.
먼저 호(好)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주말에 밀린 일들을 많이 했다.
겨울 옷 준비와 내년에 도전할 기술사 자료 정리, 집안 정리와 청소, 치과와 남원에 갖고 갈 살림살이 쇼핑, 여기저기와의 소통과 연락, 주일 성당과 구역회와 미사 준비......, 그 중에 압권은 이번 대전 집에 온 목적이자 백미인 청출회(靑出會) 대전 만남이었다.
약속한 날이 오늘인지 모르고 서해안 어청도에 갔다며 미안하다고 전화한 송 박사 아우님을 빼고는 다 참석하여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주(周) 아우님의 정년퇴임 축하와 격려를 시작으로 친정집 이야기, 시집살이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등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이런 게 사람 사는 낙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임 장소는 연구원 살이의 애환이 깃든 전민동 S에서였다.
지난 모임 때 S 이야기가 나왔다.
30여년 전 사택 앞 언덕배기에 덩그러니 홀로 서 있던 그리고, 종종 애용하던 그 식당이 지금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주변이 꽉 들어차고 다른 식당들도 많지만 여전히 그 때 그 자리에 있다고 하여 반가웠다.
저물어가는 날들에 그리움과 추억을 되살려주기라도 하듯이 윤(尹) 아우님이 다음 모임은 거기서 하자고 하여 어제 성사가 된 것이었다.
둔산동 갤러리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전민동 성당 앞에서 내렸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많이 달라졌다.
상전벽해라고 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원촌동으로, 연구단지로, 송강으로, 엑스포 아파트로 가는 큰길 빼고는 다 몰라볼 정도였다.
여기던가 저기던가 하고 길을 찾을 것은 아니었지만 많이 변한 전민동의 쓸쓸함이 느껴졌다.
풍요 속의 빈곤, 고요 안의 소란, 화려한 빛의 어두운 그림자 같은 뭐 그런 것이었는데 싫다거나 부담스럽다는 생각은 조금도 안 들었다.
다음은 마(魔)다.
둘 정도 된다.
먼저, 버스 안이었다.
705번 버스는 만원이었다.
둔산동에서 대덕대로를 통해 갑천과 엑스포 광장을 지나 전민동으로 가는 노선이다.
앉거나 서 있는 아이들은 복잡한 것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보고 두드리면서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두 정거장을 지났을 때다.
앞에 있던 배낭을 메고 앉아있던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아낙이 두리번 거리더니 저만큼 서 있는 또 다른 50대쯤으로 보이는 여자한테 손짓을 하며 여기로 와서 앉으라 했다.
유유상종인가.
바로 앞에 서 있는 미당 선생이 무안했다.
양보한다 해도 앉을 생각이 없는데 생면부지인 중년 여인들끼리 자리를 터치하다니 못 볼 걸 본 것 같았다.
더 어색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부스럭거리며 자리를 이어받은 여인은 무슨 경기에서 이긴 것처럼 흐뭇해하는 표정이었다.
신탄진 종점 끝까지 간다해도 몇 정거장 안 될 텐데 그렇게 자리를 쟁취하여 폼 잡고 앉아있어야 하는 것인지 꼴보견이었다.
“아이고, 이 O아. 왜 사니” 하고 꿀밤이라도 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폭력에 성희롱까지 뒤집어쓸 테니 못 본 척하는 것이 장땡이었는데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다음, 식당이었다.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영업을 했다면 돈도 많이 벌었고, 손님들 덕도 많이 봤을 텐데 고객 봉사는 적어도 미당 선생이 보기에는 낙제점 수준이었다.
빛바랜 외장과 칙칙한 내부, 입에 척 달라붙는다고 보기 어려운 밑반찬과 한우를 딱딱하게 구워주는 어설픈 서빙, 만만치 않은 가격의 가성비 여부 등등 맘에 안 드는 편이었다.
옛날을 떠올리며 일부러 찾았는데 다음에도 거기로 가자고 하면 고개를 가로 저을 것 같았다.
호십영마(好十零魔)라면 엑설턴트이다.
호팔이마(好八二魔)도 굿이다.
호오오마(好五五八) 정도도 인정한다.
그러나 호이팔마(好二八魔)는 절대로 노땡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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