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전삽으로 굴삭기로
머리가 잘 돌아가고 몸이 빠르다.
누구라도 좋아하는 스타일일 것이다.
머리가 안 돌아가고 몸이 느리다.
어디를 가도 환영받지 못하는 스타일일 것이다.
태생(胎生)이다.
좋은 것이라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고, 안 좋은 것이라고 해서 다 안 되는 개 아니다.
그렇더라 미리 겁먹고 자포자기할 것은 아니다.
선천적인 결함을 후천적인 노력으로 어느 정도는 만회할 수 있다.
못난이도 요석이 될 기회는 있고, 잘난이도 패석으로 될 기회가 있다.
위기 상황이다.
돌발사태다.
절체절명의 시간이다.
천재지변이다.
1초가 아니라 0.01초도 지체할 수 없다.
그럴 때는 머리와 몸이 신속 정확하게 돌아가야 한다.
늦으면 늦을수록 손해가 커지고 회복이 어려워진다.
위상과 위치에 맞게 처신할 수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한 경쟁하에서 무리없이 살아갈 수 있는 생존법이다.
따르지 못하면 낙후되거나 도태될 수밖에 없다.
중대 사안이 벌어졌다면 시의적절하게 대처해야 한다.
못한다면 불행이다.
뭔지 개념도 없고, 뭘 할 줄도 모르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 먼 산만 바라보며 멍때리기를 한다거나 남의 다리 긁는 식으로 엉뚱한 짓이나 한다면 남들에게 피해를 주고 자신에게는 남는 것이 없는 고달픈 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
김c) 작은 서류함을 하나 오전까지 만들어 오세요.
이c) 크기가 얼마만 할까요.
김c) 보면 몰라요, A4 용지 크기에 적당한 높이면 돼요.
이c) 아, 예. 그런데 만들 나무가 없는데요.
김c) 알아서 좀 해요.
이c) 아, 예. 그럼 색상은 어는 색으로 할까요.
김c) 속터진다. 말대꾸도 귀찮다.
이c) 답답하다, 한숨만 나온다.
김c) 더 묻지 말고 알아서 만들어봐요.
이c) 더 알아야 할 것이 많아서 그래요.
김c) 묵묵부답.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이c) 침묵모드. 머리가 깨질 거 같고 몸이 늘어질 것 같다.
김c) 붉으락푸르락이다. 뭘 시킬 수가 없다.
이c) 허둥지둥이다. 뭘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김c) 화가난다. 실종된 톱다운에 좌충우돌이 밉상이다.
이c) 기죽는다. 사라진 보톰업에 지시일변이 마땅찮다.
우여곡절 끝에 상자를 만들 나무판을 구해왔다.
그런데 아뿔사다!
매끈한 대패질은 고사하고 땔감 수준이다.
김c) 그 걸로 박스를 짜려고요.
이c) 네. 이거면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톱과 망치 등 연장이 없는데요.
김c) 혈압이 팍 올라 얼굴이 발개진다. 그래서 어쩌라는게요. 인터넷으로 주문해줄까요.
이c) 오금이 팍 저리고 얼굴이 창백해진다. 오늘 중으로는 못 만들겠어요. 다음 주 서울갈 때 하나 사 와야겠어요.
김c) 에라. 이 화상아. 박스 하나 만들려다가 세월 다 가겠다. 때려치우고 하던 일이나 해요.
이c) 에이. 왜 그러세요. 노여워하시지 마세요. 그럼 박스 건은 없던 일로 하고 저는 이만 물러가요.
이 정도의 상황극이면 참 고단하다.
하나에서 열까지 다 짚어질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다.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는 것인지 아득하다.
그런 부류로 분류되지 않아 다행이다.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몸이 민첩한 것도 아닌데 남들 속 터지게 하는 정도는 아니다.
이런 상황극에서도 이해, 소통, 양보, 화합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눈을 씨고 봐도 쓸 수 있는 그것뿐인 야전삽 하나면 늴리리 기와집을 짓고도 남는다는 구식 군대 시절 사람들이 보면 개탄스럽다.
그러나 굴삭기를 중장비와 첨단 설비를 동원해도 개집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 신식 군대 시절 사람들이 생각하면 무리수다.
<http://kimjyyhm.tistory.com> <http://blog.daum.net/kimjyyhm>
<http://www.facebook.com/kimjyyfb> <http://twitter.com/kimjyytwt>
(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