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야전삽으로 굴삭기로

Aphraates 2024. 2. 29. 05:17

머리가 잘 돌아가고 몸이 빠르다.

누구라도 좋아하는 스타일일 것이다.

머리가 안 돌아가고 몸이 느리다.

어디를 가도 환영받지 못하는 스타일일 것이다.

 

태생(胎生)이다.

좋은 것이라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고, 안 좋은 것이라고 해서 다 안 되는 개 아니다.

그렇더라 미리 겁먹고 자포자기할 것은 아니다.

선천적인 결함을 후천적인 노력으로 어느 정도는 만회할 수 있다.

못난이도 요석이 될 기회는 있고, 잘난이도 패석으로 될 기회가 있다.

 

위기 상황이다.

돌발사태다.

절체절명의 시간이다.

천재지변이다.

1초가 아니라 0.01초도 지체할 수 없다.

그럴 때는 머리와 몸이 신속 정확하게 돌아가야 한다.

늦으면 늦을수록 손해가 커지고 회복이 어려워진다.

 

위상과 위치에 맞게 처신할 수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한 경쟁하에서 무리없이 살아갈 수 있는 생존법이다.

따르지 못하면 낙후되거나 도태될 수밖에 없다.

중대 사안이 벌어졌다면 시의적절하게 대처해야 한다.

못한다면 불행이다.

뭔지 개념도 없고, 뭘 할 줄도 모르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 먼 산만 바라보며 멍때리기를 한다거나 남의 다리 긁는 식으로 엉뚱한 짓이나 한다면 남들에게 피해를 주고 자신에게는 남는 것이 없는 고달픈 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

 

c) 작은 서류함을 하나 오전까지 만들어 오세요.

c) 크기가 얼마만 할까요.

 

c) 보면 몰라요, A4 용지 크기에 적당한 높이면 돼요.

c) , . 그런데 만들 나무가 없는데요.

 

c) 알아서 좀 해요.

c) , . 그럼 색상은 어는 색으로 할까요.

 

c) 속터진다. 말대꾸도 귀찮다.

c) 답답하다, 한숨만 나온다.

 

c) 더 묻지 말고 알아서 만들어봐요.

c) 더 알아야 할 것이 많아서 그래요.

 

c) 묵묵부답.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c) 침묵모드. 머리가 깨질 거 같고 몸이 늘어질 것 같다.

 

c) 붉으락푸르락이다. 뭘 시킬 수가 없다.

c) 허둥지둥이다. 뭘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c) 화가난다. 실종된 톱다운에 좌충우돌이 밉상이다.

c) 기죽는다. 사라진 보톰업에 지시일변이 마땅찮다.

 

우여곡절 끝에 상자를 만들 나무판을 구해왔다.

그런데 아뿔사다!

매끈한 대패질은 고사하고 땔감 수준이다.

 

c) 그 걸로 박스를 짜려고요.

c) . 이거면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톱과 망치 등 연장이 없는데요.

 

c) 혈압이 팍 올라 얼굴이 발개진다. 그래서 어쩌라는게요. 인터넷으로 주문해줄까요.

c) 오금이 팍 저리고 얼굴이 창백해진다. 오늘 중으로는 못 만들겠어요. 다음 주 서울갈 때 하나 사 와야겠어요.

 

c) 에라. 이 화상아. 박스 하나 만들려다가 세월 다 가겠다. 때려치우고 하던 일이나 해요.

c) 에이. 왜 그러세요. 노여워하시지 마세요. 그럼 박스 건은 없던 일로 하고 저는 이만 물러가요.

 

이 정도의 상황극이면 참 고단하다.

하나에서 열까지 다 짚어질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다.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는 것인지 아득하다.

 

 

그런 부류로 분류되지 않아 다행이다.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몸이 민첩한 것도 아닌데 남들 속 터지게 하는 정도는 아니다.

이런 상황극에서도 이해, 소통, 양보, 화합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눈을 씨고 봐도 쓸 수 있는 그것뿐인 야전삽 하나면 늴리리 기와집을 짓고도 남는다는 구식 군대 시절 사람들이 보면 개탄스럽다.

그러나 굴삭기를 중장비와 첨단 설비를 동원해도 개집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 신식 군대 시절 사람들이 생각하면 무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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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