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마
대전 치과에 가서 급한 대로 할 것만 하고 나머지는 일정을 잡아 다음에 하기 하고 청양 계봉 가든으로 달려갔다.
고향 친구들이든 지인들 또는, 입소문을 통해 들어보지 못한 정산면과 목면 경계 선상 즈음 깊숙한 산속에 있었다.
큰형님 생신 연을 하기 위하여 서울 아이들이 예약을 해놓은 곳이었다.
한정식 위주의 음식, 널찍하고 조용한 분위기, 수더분한 서비스 3박자를ㄹ 비롯하여 가성비 좋은 조건은 다 갖춘 그런 집이었다.
아이들한테 칠갑산을 정점으로 하여 청양 고을 웬만한 식당은 다 가본 편이지만 여기가 제일 나은 것 같다며 칭찬을 했더니 그러시냐며 좋아했다.
올 가족은 오고 못올 가족은 못 온 상태에서 삼형제 가족들이 오붓한 시간을 갖고 나서 집안 이야기를 좀 하다가 헤어졌다.
형님들과 소주 한 잔 못 나눈 것이 좀 아쉬웠지만 강행군하는 일정인데다가 운짱이니 술은 어림도 없었으므로 저녁 또 다른 모임에서 한 잔 하기로 맘을 바꿨다.
저녁 모임 신계룡팀에는 소맥폭탄 자리는 펼쳐졌는데 실적이 영 저조했다.
8/10이 참석하여서 소맥 12로 끝났다.
관례적으로 가던 인근 통닭집 2차도 다음으로 미뤘다.
단순 주량으로 보면 12/8=1.5병 꼴이다.
도토리 메밀 전, 돈수육, 쭈꾸미 비빔밥, 만두전골로 이어지는 안주는 푸짐하건만 다루는 선수들이 몸을 사렸다.
총무 아우님이 탁자에 오른 술병을 카운트하면서 갈수록 병이 줄어든 다면서 현상유지라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하여 웃었다.
그런 모임이 있고, 참석을 할 수 있고, 줄어드는 양을 걱정하지만 함께 대작할 수 있고, 어떤 때는 깜빡 깜박한다고 걱정하면서도 무탈한 것이 얼마나 고마우냐면서 건강 조심해서 잘 살자고 하는 의기투합이 마냥 좋았다.
한양 천리 남원에서 온 양반은 건강해 보이는데 왜 그렇게 약해졌냐고 하면서 잔을 건넸지만 정중하게 사양하면서 현장에서 젊은 층들과 어울리다보니 역부족이어서 청춘은 3에 노년은 1인 3:1법칙으로 하자고 한 것이 습관하 돼서 그러니 양해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양이고 질이고 따질 거 없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도 ” 이니 그대로만 나가도 잘 하는 것이다.
천지창조 후에 하루는 당신 시간으로 쉬겠다는 말씀마따나 집에 들어와 책을 좀 보다가 잠이 들었는데 전화가 왔다.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전화기를 열었다.
모르는 전화였다.
일단은 남원 전화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늦은 시간에 남원에서 전화가 오면 예사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나 선거 홍보 전화, 보이스 피싱 전화도 아닌 듯했다.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기를 열었더니 신상파악부터 했다.
“김종연씨이지요. 나는 문화동 학교 출신......,” 하는데 뜨끔했다.
모르는 전화에서 학교 운운하거나 종친 이야기 같은 것을 하며 분명 뭔가 협조를 구한다거나 뭔가를 사달라고 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헤어진 지 반세기 만에(2024-1972=52) 연결이 된 K였다.
오늘 우연히 고등학교 동기동창 J와 k를 만나 시간을 함께하면서 종연이 네 얘기가 나와서 해본 것이라며 반가워하였다.
미당 선생도 반가웠다.
J는 가끔 만나니 소식을 안다.
그러나 너는 고위 공무원으로 퇴직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찌 지내고, k도 지역 전기 계통에서 열심히 일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뭘 하고 물었다.
그러자 대전 시내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감리를 하고 있다면서 너도 감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참 재밌다고 했다.
“얀마, 그럼 진작 연락을 했어야지 왜 이제서냐”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더니 지금이라도 연결이 됐으니 좋은 거 아니냐고 했다.
내가 H교회 장로라서 주일날은 어렵고, 술도 안 좋으니 평일이나 주말에 만나자며 맛있는 거 사준다고 했다.
“다 늙어 꼬부라져서 만나는데 한 잔 술이 없어서야 되겠냐” 라고 하며 나는 술을 사겠다고 하였더니 아무러면 어떠냐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어쨌거나 조만간에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곤히 잠들어가는 판에 걸려온 전화가 짜증이었지만 통화를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문화동 전기쟁이들, 파이팅!
이 구호가 저절로 나왔다.
“가엾은 어머니 날 왜 나셨나요‘ 라는 용복 가수의 절규가 나올 때도 있었던 문화동 학교이지만 때로는 이렇게 때로는 ”나는 행복합니다“ 라는 항기 가수 노래가 우렁차게 나올 때가 있다.
앞으로도 생일 없는 소년보다는 행복한 사나이로 남을 것 같은데 그런 게 사람 사는 낙이고 복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써보는 “얀마”가 좋았다.
굴삭기를 선전하는 홍보물에서 얀마를 보고, 어떤 코미디 OTT에서 PX병이 얀마 얀마를 노래하다가 꿀밤 맞는 장면을 보면서 웃었는데 오늘은 그들보다도 몇 배는 더 즐거움을 주는 얀마였다.
https://youtu.be/Ch5wjUka78A?si=C0pSUmN9a41Iz6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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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