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조공 造公

Aphraates 2024. 3. 13. 06:02

고등학교 때다.

도청과 역 중앙로, 계룡산과 공주 가는 계룡로, 전라도와 논산 가는 길 백제로가 갈라지는 충렬탑 아래의 서대전 오거리에서 논산 쪽으로 호남선 철로를 건너가다 보면 다리가 하나 있었다.

금산과 안영리를 거쳐 내려오는 유등천을 건너는 유등교다.

대전 강남 쪽에서 강북 쪽으로 가는 다리는 유등교를 비롯하여 대전에서 공주와 조치원 방향으로 가는 수침교와 유성의 만년교가 있었다.

 

유등교는 문화동 학교와도 멀지 않았다.

학교 근처인 도마동, 태평동, 유천동, 문화동에서 하숙과 자취를 하는 시골 유학생들이 많았다.

유등 다리 밑은 여름에 멱감는 곳이기도 했다.

 

유등교 건너기 전에 오른쪽으로 우중충하고 커다란 공장이 있었다.

그 옆으로는 대전피혁과 대원 제지 등 제법 굵직굵직한 공장들이 서대전역의 석탄 야적장과 함께 있었다.

도로변의 그 공장은 조폐공사 대전 공장이었다.

당시에는 공장이라 하지 않고 그냥 조폐공사라 했다.

조폐공사는 한전, 유공, 석공, 중공 등 주로 에너지 관련 분야와 함께 몇 안 되는 국영기업이었다.

은행, 신문사, 외국기업과 함께 인기가 좋던 국영기업이었다.

공무원, 군인, 교사 등은 3과 고시와 사관학교 출신을 빼고는 별로 인기가 없었는데 박봉에 시달리고 사명감에 눌리는 한계 때문이었다.

독점형태인 철도, 체신, 담배 인삼 등등은 정부 현업 조직 외청이어서 어정쩡했다.

그 뒤로 나라가 커지고 발전하면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공사와 공기업들이 들었는데 관()과 사()의 중간 형태로 장단점이 있다.

 

조폐공사는 당시처럼 지금도 인기가 좋다.

소규모 형태인데다가 특수 분야를 주업으로 해서 늘 좋은 쪽에 서 있는 위상이었다.

좋은 것은 우리가, 안 좋은 것은 너희가 가져가라고 하는 식의 한전 같은 대형 공기업은 바람 잘 날이 없어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여 간부 또는 직원으로 정년으로 퇴임하기까지 집단 사표와 봉급 반납을 여러 번 했다.

조폐공사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일부에서는 한국은행의 자회사처럼 존재하여 돈을 찍어내는 인쇄소나 마찬가지라고 폄하하기도 했지만 조직적으로나 조직원으로서나 알짜배기였다.

 

그렇던 조폐공사의 위상과 존재감이 점점 줄어든단다.

주 업무라고 할 수 있는 지폐(紙幣) 발행이 줄어들어 호구지책으로 사기업에서나 하는 판화나 모바일 상품권 발행 같은 영역도 넘볼 정도란다.

밥벌이를 위해서 체면이고 뭐고 없이 손발을 걷고 나서는 것이다.

이해된다.

지갑이나 호주머니가 두툼해야 든든한 미당 선생 같은 사람들도 스마트 폰이나 카드 하나면 안전하게 뭐든지 할 수 있으니 굳이 현금을 갖고 다닐 필요가 없다.

코닥 필름과 쏘니 디지털카메라가 쏙 들어가고 삼성과 애플 스마트 폰이 대세인 세상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경제활동에 현금을 사용하지 않으니 지폐의 필요성이 줄어들고, 지폐를 찍어내는 조폐공사가 안녕하실 수가 없게 된 상황이다.

 

지난주에는 청양 본가에 다녀오면서 대덕연구단지 길로 귀가하였다.

그 중간에 조폐공사 본사가 있다.

바로 옆에는 지진이 발생하면 바쁜 지질자원 연구소와 원자력 안전원이 있다.

형편이 어려워진다는 조폐공사가 다시 뵜다.

그리고 그 직장에 다니던 명호 친구, 강 형님, 염 아우님등 조폐공사맨들은 어디서 뭘 하고들 계신지 교류가 끊긴 것이 아쉬웠다.

아울러 갈마동 본당에서 자별하게 모시던 김&김 박사 회장님은 건강하시고, 동문인 후인 아우님과 문단 활동을 함께 하던 최 박사 아우님은 무탈하신지 보고 싶다.

또한 베드르와 프란치스카 님네 아이 보나는 원자력 안전원에서 역시 S 출신 석사답게 톱 클래스로 잘 있는지 박사 학위 소식 좀 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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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