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인
감시인 역할을 꽤 했다.
서울 영등포구 신정동(현재 양천구 목동지구)에서 입시 준비를 하는 주경야독하는 재수생으로 회학 공장 야경(夜警)을 섰더.
군대 가서는 논산훈련소 훈련병과 전곡 한탄강변의 81연대 방카 작업병을 제외하고는 중부전선 임진강변 132 종달새 GP 상황병으로 3년을 복무했다.
1977년 불공장 한국전력에 입사하여서는 고향 청양으로 낙향하여 사양 변전소 변전원과 청양 전력소 운전 대리로 1990년까지 설비 감시원 직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정년 말엽에는 2년 여동안 순환보직에 따라 대전과 전주의 급전사령(給電司令)으로 첵임 감시원 역할을 했다.
퇴직하고서는 설비 괸리오원 감리단장으로 13년 째 살고 있다.
그러니까 감시원으로 1+3+13+2+13=32년을 살았다.
평생 73년 동안에 32년을, 사회생활 53년에 32년을 감시인으로 살았으니 뭐라 해야 할까.
건강도 해야 하고, 머리도 잘 돌아가 하고, 임기대응과 신속하고 정확한 처리의 능력도 있어야 하고 ,눈치도 빨라야하는 감시인인데 잘 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과 없이 이어져 오고 있으니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오늘은 사전 투표를 마친지라 한가로운 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감시인으로 등장했다.
포터 짐꾼으로 농수산도매 시장에 갔다가 머찌감치 서서 흥정하는 데보라를 감시 아닌 감시를 하게 된 것이다.
시릉 미당 선생은 흥정이 없다.
정찰가 맨이다.
물건이거나 서비스 대가로 달라는 대로 다 준다.
습성이 그렇다.
그런 습성때뭉에 손해를봤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오히려 덤으로 뭔가를 얻었다는 생각이다.
흥정은 싫다.
여자들 쇼핑하는데 따라가면 짜증난다.
내내가 살 거라면 얼른 집어 들고 달라는대로 주고 나오면 되는 걸 지리한 줄다리기를 한다.
여기저기 둘러보기도 하고, 물건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오모조모 살펴보기도 하고, 비씨다며 깎자 하고, 맘에 인 들면 돌아볼 것도 없이 나오고......,남과 여가 매칭 안 되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남녀가 유별하닌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후려 처 사든, 마가지를 쓰던 여자가 알아서 해야지 남자와의 협언은 대부분이 불가능할 것이다.
여기 이 사람.
얼굴없는 첩보원이나 정보원의 비밀 요원이 아니다.
삼대소조나 게슈타포처럼 모든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결사요원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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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