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녀
부모와 자녀.
둘이 관계는 숙명이다.
이치고 도리고 다 필요 없다.
천륜이다.
둘 간에는 따지고 계산할 게 없다.
내 것이 네 것이고, 네 것이 내 것이다.
둘은 서로 오염될 수도 없고, 오염시킬 수도 없다.
무지몽매한 사람이 부모 자녀 간에도 셈은 확실히 해야 한다는 제법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우지만 그는 천인공노할 패륜이다.
계산이 안 통하고 계산할 것이 없는데 계산 운운하면 그는 이미 사람이 아니다.
부모.
자녀가 곧 우주이자 모두다.
자냐가 어려우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고서라도 자식의 손을 잡고 걸어 나온다.
어려운 자녀를 방치하거나 외면하면 부모가 아니다.
천부당만부당이다.
자녀가 죽을죄를 지었어도 인정 못 한다.
우리 아이의 털끝 하나 건드려도 안 된다.
우리 아이가 절대로 그럴 리 없지만 행여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랬을지라도 그는 착하고 선한 우리 아이 잘못이 아니고 못난 이 부모 탓이니 아이 대신 나를 데려가라고 애원하고 통곡한다.
자녀.
부모와 마찬가지다.
좀 결이 다르고 좀 덜 하지만 부모를 향한 사랑은 다르지 않다.
부모가 고통스러우면 만사 제친 채 손발 걷어붙이고 나서 그를 덜어주려고 모든 것을 바친다.
부모가 무슨 잘못을 했는가 아닌가는 전혀 문제가 안 된다.
부모를 위한 것이라면 뭐든지 얼마든지 대신할 수 있어 두 손을 불끈 쥐고 포효하면서 저승길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부모 자녀 간에는 상경하애라든가 효불효 같은 것의 구분이 불가능하다.
쪼개고 갈라서는 존재할 수 없는 관계다.
모든 것을 넘어서고 압도하는 숭고하고 거룩한 사랑이 있을 따름이다.
<‘난 계몽됐다’ 김계리, 한밤중 폭풍 SNS “尹 구치소 영치금 계좌 올렸더니…”> 란 기사가 올라왔다.
맘이 착잡하다.
빨리 매듭을 짓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구속에 구속되어 갈피를 못 잡는 모습에 화도 치민다.
현재를 기준으로 하여 전후 모습을 보노라면 괘씸하기도 하고, 좀 더 깊고 멀리 보노라면 측은하기도 하다.
도대체 왜 그랬어요.
어디다 하소연이나 화풀이할 수도 없어서 혼자 중얼거려보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환호하는 측이나 좌절하는 측이나 인간 비극이다.
효를 과시하던 많은 자녀는 어디론가 가버려 코빼기도 안 보인다.
죽으라면 죽는시늉까지 하던 무리도 나는 모른다고 발뺌한다.
자업자득이자 인과응보이니 반성하고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주창하는 측은 아직도 분이 덜 풀려 씩씩거린다.
효녀 심청이를 소환해 본다.
인당수와 공양미를 떠올려본다.
뺑덕어멈도 되돌아본다.
아무래도 아버지 심 봉사 심학규가 눈을 뜨게 될 것 같진 않다.
다들 도망갔다.
계몽령이자 아버지라 하던 딸 하나가 남아 우리 아버지 좀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현실은 냉랭하다.
인심은 각박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동정심 없어 못 살겠다고 하기에는 너무 엄중한 사안이다.
얼토당토않게 박박 우기며 반푼이를 자처하며 억지를 부리더니 이제 와서 그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고 눈짓 하나 안 준다.
파증불고(破甑不顧) 즉,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회개와 용서와 자비로 이어지는 높으면서도 낮은 사랑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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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