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호랑이
우리나라에는 처음 오는 것인데 올해 열두 번째 태풍이란다.
언제 그렇게 소리소문없이 발생했다가 소멸됐는지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 하는 태풍이 오면 바쁘다.
태평양에서 발원하여 오키나와-큐슈-제주도-남해안/서해안/동해안으로 올라올 때면 한반도는 긴장한다.
기상청과 중앙 재해대책본부를 주축으로 하여 숨 가쁘게 돌아간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에 최대한으로 대비하여 유비무환에 임하고자 하는 것이다.
태풍이라면 친구라고 할 정도로 끼고 살아야 하는 일본에 비하면 우리는 그래도 나은 편이라 자신을 위로하면서 만반의 준비를 한다.
최선을 다해도 큰 상처와 피해를 주고 한반도를 관통하거나 주변을 지나간다.
야속하다는 탄식을 하기도 하는데 사전에 대비하는 만큼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은 그간의 경험을 통하여 잘 알고 있기에 연례행사처럼 대응하는 것이다.
제12호 태풍 오마이스(OMAIS)는 소형급으로 알려졌다.
작다고 얕볼 것은 아니다.
한반도와 대륙에 걸려있는 가을장마 전선과 연계되어 많은 비와 강한 바람을 동반할 것이라는 예보였다.
태풍의 길목인 제주도와 남해안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고 했다.
전화기에서는 중앙과 지방에서 보내는 태풍 대비 행동요령 메시지가 연시 울렸다.
전력 계통은 태풍이라면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두려운 존재다.
설비가 현대화된 지금 리스크가 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변함이 없다.
많은 비는 그래도 오손된 전력 설비를 청소해주는 측면도 있지만 바람과 낙뢰는 백해무익한 존재들이다.
퇴직 후에는 현직 때와는 달리 설비 운영 파트가 아니고 건설 파트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어서 태풍의 굴레에서 조금 자유로운 편이지만 그래도 만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용수철처럼 튀어 나가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어서 음주가무를 중단한 채 인터넷을 열어 놓고 TV를 시청하면서 대기한다.
이번도 다름없었다.
저녁에 제주도를 지나 자정쯤에는 남해안 여수와 창원 사이의 남해 섬을 관통할 것으로 예보된 태풍 진로를 예의 주시했다.
예보된 진로 대라면 삼천포는 한반도를 상륙하는 관통 지점이 된다.
바짝 긴장하면서 지켜봤다.
들어오는 도둑놈을 몽둥이로 내리치듯이 할 수는 없지만 여차하면 뭔가는 해야기 때문에 숨죽이고 기다렸다.
예보는 맞았다.
오마이스는 자정 무렵에 삼천포 향촌 집 바로 옆이자 근무처 삼천포 화력 소재지인 고성군을 정통으로 관통하여 포항 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그런데 이상했다.
오나라 오나라 하고 기다린 반가운 손님은 아니지만 오더라도 문제없다고 할 정도로 벼르고 있었는데 그냥 스쳐 지나가는 모양새가 됐다.
자정 쯤에 중간 정도의 바람에 강한 비를 몇 차례 뿌리더니 보슬비 오는 양상으로 바뀌면서 새벽이 이어지고 있다.
으르렁거리는 백두산 호랑이가 아니라 종이호랑이로 끝난 것이다.
천만다행이고 감사할 일이다.
비상 연락망을 통하여 급한 연락이 온 것도 없고, 계속하여 띵 똥 거리던 메시지도 없고 조용하다.
이대로 끝난 것이 아닌가 싶다.
일찍 출근하여 근무자분들로부터 상황 파악을 해보고 현장을 둘러보면 알겠지만 현재로서는 특이 사항이 없을 듯하다.
OB(오비,은퇴자)의 Again(어게인,다시한번) YB(영비,재직자)를 하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아, 옛날이여”를 노래할 기분은 아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정전이 되거나 깜빡이는 플리커 현상이 일어나면 자신도 모르게 어이쿠 소리가 나는 사명감이자 직업병 같은 것이 있었는데 잊히지 않고 지금도 그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복 받은 것이지만 해피하다고 하기는 좀 그렇다.
http://www.facebook.com/kimjyyfb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