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김 노인 (金 路人)

Aphraates 2022. 10. 3. 05:47

우리 성당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몇 개 있다.

어려운 살림 중에서도 노인을 공경하고 은혜에 감사드리며 작으나마 기쁨을 드리기 위한 소박한 것들이다.

 

미당 선생도 노인 봉사 이력이 좀 있다.

봉사직 단체장 책임을 맡고 있던 2000년대 중반까지는 적극적이고 광범위하게 열심이었고, 그 뒤로는 소극적이고 제한적으로 인사치레로 조금 하고 있다.

그렇게 희미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다.

어른을 대접하는 것도, 어른으로 대접받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그래서 이쪽이고 저 쪽이고 아예 발길을 끊은 것이다.

아직 일을 하고 있는 처지이니 예전처럼 어른들 위하여 뭔가는 조금 더 할 수도 있지만 자신이 대접받아야 하는 노인이 되어 있으니 나서서 노인 봉사한다고 그러기에는 주제 넘는 일이다.

그렇다고 노인 줄에 들어섰다 해서 엇비슷한 나이로 같이 늙어가는 봉사자들이 제공하는 것을 날름 받는 것도 안 어울릴 것 같아 저는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니라면서 사양하고 얼른 자리를 피한다.

애늙은이도 아니고 늙은 애도 아니고 어정쩡한 스탠스다.

나이가 더 들어 중노인이 돼도 지금 상태를 유지할 것 같다.

아직은 도움을 받을 처지도, 이제는 도움을 베풀 처지도 아니고 홀로 노니는 층이 된 것인데 언제까지 갈 지는 알 수 없다.

 

노인들 걱정도 크다.

젊은 사람들이 적은데다가 있는 청춘들조차도 일해야 먹고 산다며 일터로 나가고 성당은 노인들이 성당 보모 역할을 하고 있다.

일손을 놓고 수염 쓰다듬으며 자손들 절을 받아야 할 할아버지가 봉사 단체장을 하고, 손자 손녀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나날을 보내야 할 할머니들이 전 붙이고 설거지 하느라 찬물에 손을 담그는 형편이다.

지금이 그럴지라도 그 끝이 보이면 좀 나을 텐데 끝이 안 보인다.

 

지인들 중에는 동네 경로당에 나가시는 분들이 제법 있다.

아직 뒷방 신세로 눌러앉을 때는 아니고 뭔가는 좀 더 일을 해야 할 텐데 왜들 그러시냐고 짜증스럽게 어깃장을 부린다.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이 재밌다.

경로당 막내 또래이긴 하나 그럭저럭 시간 때우며 지낼 만 하단다.

일을 하고는 싶지만 딱히 오라는 데도, 갈 곳도 없단다.

현직에 있을 때를 생각하며 O폼 잡는 것은 아니나 또, 삼식이 노릇하며 눌러 앉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뭔가는 해야 하지만 채면불구하고 나갈 자리가 없단다.

하는 사람들은 잘도 하고, 돈을 안 따지고 경노 우대 일자리에 나가기도 하더만 형님(아우) 나이에 상노인 행세하는 것은 아니잖느냐고 핀잔하면 이 세계도 실상을 알고 보면 그리 녹녹치 않으니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되받아친다.

 

내 나이가 어때서- 코리안팝스오케스트라(편곡)/오승근/2012, 다음

그럴 것이다.

아동 문제, 학생 문제, 청년 문제가 있는데 노인 문제가 없으면 이상하다.

다들 자기들이 소외당하고 있다는 불만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류 역사 이래 안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내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고 노발대발할 것도 아닌 듯싶다.

 

어제가 노인의 날이었단다.

정치권에서 관례적으로 나오는 노인을 잘 모시겠다는 립서비스만 아니어도 그냥 지나갔을 텐데 올해도 어김없이 좋은 말로 때워지면서 지나쳤다.

오늘 노인의 날이니 누군가는 찾아뵙고 식사라도 한 끼라 대접해야겠다는 소리를 하지도 않았고, 오늘이 그 날이니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자고 하는 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신문 보고서야 오늘이 별 의미도 없는 공갈같은 그 날이구나 하고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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