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노인 (金 路人)
우리 성당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몇 개 있다.
어려운 살림 중에서도 노인을 공경하고 은혜에 감사드리며 작으나마 기쁨을 드리기 위한 소박한 것들이다.
미당 선생도 노인 봉사 이력이 좀 있다.
봉사직 단체장 책임을 맡고 있던 2000년대 중반까지는 적극적이고 광범위하게 열심이었고, 그 뒤로는 소극적이고 제한적으로 인사치레로 조금 하고 있다.
그렇게 희미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다.
어른을 대접하는 것도, 어른으로 대접받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그래서 이쪽이고 저 쪽이고 아예 발길을 끊은 것이다.
아직 일을 하고 있는 처지이니 예전처럼 어른들 위하여 뭔가는 조금 더 할 수도 있지만 자신이 대접받아야 하는 노인이 되어 있으니 나서서 노인 봉사한다고 그러기에는 주제 넘는 일이다.
그렇다고 노인 줄에 들어섰다 해서 엇비슷한 나이로 같이 늙어가는 봉사자들이 제공하는 것을 날름 받는 것도 안 어울릴 것 같아 저는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니라면서 사양하고 얼른 자리를 피한다.
애늙은이도 아니고 늙은 애도 아니고 어정쩡한 스탠스다.
나이가 더 들어 중노인이 돼도 지금 상태를 유지할 것 같다.
아직은 도움을 받을 처지도, 이제는 도움을 베풀 처지도 아니고 홀로 노니는 층이 된 것인데 언제까지 갈 지는 알 수 없다.
노인들 걱정도 크다.
젊은 사람들이 적은데다가 있는 청춘들조차도 일해야 먹고 산다며 일터로 나가고 성당은 노인들이 성당 보모 역할을 하고 있다.
일손을 놓고 수염 쓰다듬으며 자손들 절을 받아야 할 할아버지가 봉사 단체장을 하고, 손자 손녀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나날을 보내야 할 할머니들이 전 붙이고 설거지 하느라 찬물에 손을 담그는 형편이다.
지금이 그럴지라도 그 끝이 보이면 좀 나을 텐데 끝이 안 보인다.
지인들 중에는 동네 경로당에 나가시는 분들이 제법 있다.
아직 뒷방 신세로 눌러앉을 때는 아니고 뭔가는 좀 더 일을 해야 할 텐데 왜들 그러시냐고 짜증스럽게 어깃장을 부린다.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이 재밌다.
경로당 막내 또래이긴 하나 그럭저럭 시간 때우며 지낼 만 하단다.
일을 하고는 싶지만 딱히 오라는 데도, 갈 곳도 없단다.
현직에 있을 때를 생각하며 O폼 잡는 것은 아니나 또, 삼식이 노릇하며 눌러 앉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뭔가는 해야 하지만 채면불구하고 나갈 자리가 없단다.
하는 사람들은 잘도 하고, 돈을 안 따지고 경노 우대 일자리에 나가기도 하더만 형님(아우) 나이에 상노인 행세하는 것은 아니잖느냐고 핀잔하면 이 세계도 실상을 알고 보면 그리 녹녹치 않으니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되받아친다.
그럴 것이다.
아동 문제, 학생 문제, 청년 문제가 있는데 노인 문제가 없으면 이상하다.
다들 자기들이 소외당하고 있다는 불만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류 역사 이래 안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내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고 노발대발할 것도 아닌 듯싶다.
어제가 노인의 날이었단다.
정치권에서 관례적으로 나오는 노인을 잘 모시겠다는 립서비스만 아니어도 그냥 지나갔을 텐데 올해도 어김없이 좋은 말로 때워지면서 지나쳤다.
오늘 노인의 날이니 누군가는 찾아뵙고 식사라도 한 끼라 대접해야겠다는 소리를 하지도 않았고, 오늘이 그 날이니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자고 하는 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신문 보고서야 오늘이 별 의미도 없는 공갈같은 그 날이구나 하고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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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