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공양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경로효친(敬老孝親)은 자식과 아랫사람들의 도리다.
그런 인간의 근본을 행하지 않거나 못 한다면?
인생을 논할 가치도 없다.
그리고 무엇이 잘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고목나무에 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부질없는 짓이다.
경로효친과 관련하여 가끔 불미스런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극히 일부분이고 아직까지는 대체적으로 잘 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그게 저절로 잘 되는 것은 아니다.
경로효친을 행함에 있어서 현실과 상충되는 것들이 있지만 그런 것들을 깊은 사랑과 부단한 인내심으로 이겨내기 때문에 경로효친이 이상적인 구호에 그치지 않고 현실적인 결과가 도출되는 것이다.
정신이 나간 사람 아니고서야 불효하고 싶은 자식과 결례하고 싶은 아랫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식이라면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천륜의 어버이를 공경하고 싶은 마음이 다 있고, 아랫사람이라면 수많은 역경을 헤치면서 오늘을 있게 만들어 준 어른들을 존경하고 싶은 마음이 다 있다.
그런데도 그를 행하지 못하고 마음뿐이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것은 그 보다도 먼저 행해야 할 일들에 억눌리기 때문이다.
마땅히 해야 하는 경로효친이지만 대부분이 실천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뭐니 뭐니 해도 경로효친을 직접 행하고 접하는 사람들이 제일 어렵다.
그들은 경로효친을 직접 행하지 않고 접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희생하는 면도 크다.
따라서 경로효친을 직접 행하지 못하고 접하지 못 하는 사람들은 경노효친을 직접 행하고 접하는 사람들을 많이 생각해주고 고마워해야 한다.
장남이기 때문에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당연하고, 책임을 맡았기 때문에 어른을 돌봐드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일 년 내내 코배기도 안 보이다가 명절 때나 제사 때에 고기 근이나 사 오고 어버이께 용돈이나 조금 드리는 것으로 모시지 않는 자식으로서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 못이고, 행사 때나 돼야 사과 박스나 사 들고 가서 어른들을 찾아뵙고 차비나 하시라며 돈 조금 드리는 것으로 할 일을 웬만큼 했다고 여기는 것은 직접 행하고 접하는 사람들의 고충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하기사 끝까지 어버이를 가슴 아프게 하며 어버이 집에 가면 쓸 만한 거 하나라도 못 가져가서 안달인 불효막심한 자식도 있고, 어른들을 못 마땅하게 여기면서도 어른들 잔치에 맨손으로 가 배부르게 잘 먹고 한 보따리 싸 오면서 얼굴색 하나 안 변하는 천인공노한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이야 얘기할 가치조차도 없는 것이니 예외다.
우리 부부는 한 갑이 넘으시고 관절로 거동이 불편하면서도 벽창호 같은 구순의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상도동(上道洞) 형수님께 항상 미안하고 고마워한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럴 때 마다 삼촌네 잘 사는 것이 어머니께 효도하는 것이고 동기간들한테 잘 하는 것이라는 말씀 한 마디에 아무 소리도 못하고 대답만 하곤 하여 미안함과 고마움을 내색하기도 죄송하다
형수님께서는 어머니를 모시는데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시지만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날로 쇠잔해지시면서 어린애 같아지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계시는데 속 터지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쯤이야 다 있을 수 있는 일로서 자식들이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가볍게 넘기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형수님이 더 고맙고 존경스러운 것이다.
얼마 전에 다른 자식들은 다 나가서 나름대로 재미나게 살고 있는데 부득이한 사정으로 고향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살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정(鄭) 작가와 우연하게 통화를 하였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안 해도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를 하며 아이들 학교 보내느라 어려움이 많은 거 같았다.
그래서 그런 경험도 없는 내가 주어들은 것과 간접 체험을 통하여 알게 된 것을 바탕으로 “그게 이 작가 삶의 재미라 여기고 잘 모시면 나중에 복 받을 것” 이라고 하였더니 뭘 바라서가 아니라 잘 해드려야 하지만 현실에 부딪히면 그게 잘 안 된다며 사람이 사는 것인지 뭐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자식 내외의 근근한 삶을 이해하고 도우려는 어버이라도 모시기 어려울 텐데 집안 살림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관심도 없이 당신들 하고 싶은 것들만 찾아다니는 어버이를 모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안 봐도 뻔하다.
본인들은 모르지만 그런 것을 감내하고 견디는 정 작가야말로 겉으로는 초라하지만 잘 사는 한 계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주말에는 여행을 갔다가 지리산 자락 촌읍(村邑)의 성당에서 공동체 미사 참례를 하였다.
아기자기하고 정이 넘치는 성당 분위기를 접하면서 갑자기 경로효친의 주체들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 성당도 다른 성당과 마찬가지로 교우 감소와 경제적인 문제 등 현실적인 어려움 많을 텐데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미사가 끝난 후에 다들 함께 모여서 차 한 잔씩 나누며 사투리로 신앙과 생활에 대해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여간 평화롭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오만함인지는 모르지만 미사 후에 그 성당에서 무슨 행사가 있어 국수라도 한 그릇 먹게 되었다면 국수 몇 백 그릇 값을 아무도 모르게 슬쩍 디밀고 나오고 싶을 정도의 분위기였다.
분위기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엿새 동안 세상살이를 위하여 뛰어다니다가 주일날에는 모든 것을 잊고 편안하게 지내는 신앙 공동체 본래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 모습이 좋고도 부러웠다.
타지인 들이 보기에 좋은 그 모습은 어찌 하다 보니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끊임없는 희생과 봉사와 인내가 있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여행 후기를 정리하다보니 그 성당의 화기애애한 모습이 자꾸 떠올랐고, 신앙 교육이나 성지순례도 중요하지만 그런 것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영성생활과 선교활동에 효과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나는 어떤지 반성이 되었다.
한 때는 우리도, 나도 그런 모습이었을 텐데 어쩌다가 이렇게 반성하는 위치가 되었는지 안타깝다.
또한 현실적인 문제들로 어려워하는 공동체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고,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니 죄송스럽다.
당신 보시기에 좋은 공동체는 누가 만들어야 하는가?
모든 이들의 몫이다.
그 몫을 해 내는 데는 다들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시부모를 직접 모시고 있는 정 작가가 다른 형제자매들에 비하여 제일 어렵듯이 직접 행하고 접하는 사람들의 고충이 클 것이니 그를 생각해 줘야 할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모시고 사는 사람이 제일로 어렵다.
그렇다 해도 우리 상도동 형수님처럼 어려울 거 하나도 없다고 웃는 성인군자(聖人君子)들이 많아야 할 텐데......, 지금 같은 세상에 마음은 있어도 실천이 안 되는 것이 문제이고,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