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성이 강하다.
작은 불씨만 대면 불이 확 일어날 판이다.
위험천만의 지경이다.
그런데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별난 짱구라도 기름통 지고 불섶으로 들어가지는 않으려 한다.
O밟으면 나만 손해다.
운이 나쁘면 여기저기로 튀는 파편은 물론이고 정조준하여 당긴 활시위의 화살까지 맞을 수 있다.
말 섞어봐야 본전 못 찾는다.
득보다는 실이 많다.
그러니 갈수록 오리무중이다.
다들 본능적으로 떠듬적거리며 눈치를 살핀다.
뭘 도모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 최소한을 지키기 위한 것이니 요즈음 부쩍 유행하는 건 보기는 아니다.
S가 하나 더 붙은 영국 소설의 주인공 테스(Tess of the D'Urbervilles)의 눈물이다.
현세 대전의 테스(아프라아테스, Aphraates)가 고대 희랍의 테스 성인(소크라테스, Socrates)을 불러본다.
테스가 테스를 디스하는 것은 아니다.
시대가 다르고 결이 다른 것을 동급 시 하면서 자화자찬하면 웃기는 일일 것이다.
반대로 시대를 초월하여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다면서 자신을 비하하면 자신이 비참해진다.
그래서 혼자 중얼거리며 왜 그러냐고 묻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이다.
코로나 확진자가 최고를 찍었다잖아.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해.
잘 쓰인 행동 지침이 있으니 그대로 해야잖아.
가능하면 바깥 활동을 삼가고, 대면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잖아.
그런데 왜 그래.
저기 이역만리 그 나라처럼 하고픈 거야.
마스크 집어 던지고 우리는 자유라고 외치면서 술 마시고, 춤추고, 포옹하며 즐거워하는 것을 넋 놓고 바라보는 거야.
백신을 개발하여 전 세계에 보급하였지만 하루에도 몇만 명씩 감염자가 나오고, 수상은 코로나에서 덜 깬 사람처럼 흐트러진 머리 휘날리며 등장하고, 영원한 우방인 미국은 여행 금지 구역으로 선포한 저기 잉글랜드 풍경을 부러워하는 거야.
남 말할 것 없다.
영국 신사가 멀어져 간 자리에 늘 해무가 드리워진 그 곳은 그렇다 치더라도 맑은 하늘에, 푸르른 산에, 파란 바다에, 백의민족인 우리 동방예의지국은 또 왜 그래.
다들 뭐에 씌었는가 봐.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모르지만 이성 상실 단계이다.
부모가 자식을 힐난하고, 자식이 부모를 린치한다.
형제가 고발하고, 자매가 고소한다.
양반 체면과 체통이 말씀이 아니다.
인간 도리를 말하지만 패륜이다.
명분이라지만 변명이다.
상도를 중시한다고 하지만 시장 질서 붕괴다.
고자질과 폭로와 비방과 야유가 피곤하다.
질서를 찾기 위한 혼이고, 미래를 향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이다.
솔로몬의 지혜가 구현되고 있는 듯하다.
서울에서 대구를 찍고 부산으로 가려다가 길이 막힌 테스한테 탈출구가 생겼다.
돌파구가 만들어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인 데 상황이 엄중하니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합법적인 지침을 내린 것이다.
현명한 처사이고, 명예로운 퇴진이다.
나도, 너도, 그대도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쉰다.
부탁 하나 할게요.
착하고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좀 그대로 놔뒀으면 해요.
뭐 달라고 안 하고, 뭐 바라는 것도 없어요.
테스의 눈물을 닦아 달라고 원하지도 않아요.
포장지를 걷어 내고, 화장을 지우고 알맹이의 민낯으로 나서야 박수를 더 받는 것이 아니냐는 훈수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그렇게 본인들 편리하게 애국 애민을 물귀신 작전으로 끌고 들어가지 않았으면 해요.
오판하고 착각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남들한테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하지 않겠어요.
돌출하지 않고, 삐딱선을 타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남들 하는 대로 하고, 하라는 대로 하고 사는 것도 잘사는 것인지 뭔지 모르지만 못 사는 것은 아니다.
거기까지 도달하기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람답게 사노라면 그리 어려운 공식이자 문제가 아닌 것을 뭘 그렇게 스스로 배배 꼬인 난제로 만들어 가며 고뇌하는 것인지......, 참 어려운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무슨 게시라도 받은 듯이 잠자다 말고 눈을 뜨자마자 이 이른 새벽에 무거운 묵상을 하는 사람도 이미 말한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어 죄송하다.
그러나 제기된 문제들을 가벼이 보지 않고 무겁게 여기면서 슬기와 지혜와 용기를 간구하는 것은 일말의 양심이자 반성이라는 점에서는 무더운 날임에도 기분 좋은 출발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희망적이다.
여기라서 그런지 새벽이 서늘하다.
멀리 보이는 가로등 깜빡이는 삼천포 항도 그리 더워보이진 않는다.
청양, 공주, 대전,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아니, 지구촌적으로 좋은 날씨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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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