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고귀한 선물

by Aphraates 2021. 10. 25.

둘이 건강하게 잘 살면 됐지 이 나이에 무슨 기념일이고, 선물인가.

이 정도면 만족하니 뭘 더 챙길 것도, 더 베풀며 나눌 것도 없지 않은가.

그리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게 아니다.

할 거는 하고, 갖출 것은 갖춰야 한다.

그래야 맘이 편하고, 여차하면 발생할지도 모를 후환도 없애는 방법이다.

 

10월 25일.

결혼기념일이다.

선물할 것이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는데 어찌할까.

필요한 것, 갖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것, 현금 같은 것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한 번 생각 좀 해 보지 그래.

그렇게 일렀다.

웃으면서 자기도 선뜻 생각나는 것이 없다면서 맘이 고맙고, 이대로만 가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내가 리드할 필요가 있었다.

 

그럼 지난주에 가톨릭 신문 한 구좌 더 후원했고, 이번 주에는 평화방송 한 구좌 후원하는 것으로 대신하면 어떨까,

그리고 오래 살라고 생일날에 먹었다는 국수 대신에 진주에서 냉면 한 그릇과 소갈비 한 따까리 하고 논개의 촉석루나 돌아볼까.

시간이 되면 인근에 있는 진주 옥봉 성당에도 한 번 가보고 말이야.

 

고귀한선물/1978/장은아, 다음

 

그리 제안했더니 좋다고 했다.

새벽 평화방송 미사를 하면서 홈페이지로 들어가 자동이체를 개설했다.

많이 하면 좋겠지만 성의 표시 정도로 했다.

평일과는 달리 텅 빈 주차장의 현장에 출근하여 현장 소장님한테 안전하게 작업하라 이르고는 점심 식후에는 삼천포와 진주에서 기다릴 테니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 당부하고 향촌 집으로 와 진주 길로 나섰다.

서울에서는 진주라 천리 길이라고 하지만 삼천포에서는 시군 경계가 접한 이웃으로 백 리 길도 안 된다.

35km 거리로 천천히 가도 50분이면 족하다.

진주는 지역 혁신 도시로서 인근 통영(충무), 사천(삼천포), 고성, 하동, 산청 등을 어우르는 경남 서부의 거점 도시인데 이름과는 달리 관광지로서 그리 유명하진 않다.

 

남강과 진주성과 진주 박물관을 돌아보았다.

널찍하고 붐비지 않아 좋았다.

시멘트가 덜 들어간 채로 공원이 잘 정비되고 깨끗한 것은 여전했다.

가벼운 옷차림의 관광객도 제법 있었다.

주로 젊은 층이 아이들과 함께 호젓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촉석루에 올라가 남강을 바라보며 폼을 잡아보고는 강가로 가 논개가 일본 장수를 안고 강물로 뛰어 들어갔다는 의암(義岩) 옆으로 가 한 컷 찍었다.

물이 그리 깊지가 않아 여기서 일본 장수를 끌고 들어갈 수 있겠나 하고 말했더니 옆에 있던 어떤 중년의 커플이 웃었다.

 

때가 되었다.

그냥 갈 수가 없었다.

진주 별미인 소고기(갈비), 냉면, 비빔밥을 먹기 위하여 미리 검색해놓은 유명 맛집 하연옥에 갔다.

식당 분위기가 맛깔스럽고, 종업원들이 예의 바른 것이 안 먹어봐도 수준급일 것 같았다.

기왕 왔으니 다 먹어보자면서 소갈비 2인분에 물냉면과 비빔밥을 시켰다.

음식을 내왔는데 깜짝 놀랐다.

밑반찬도 많고 본 메뉴 양도 장난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차근차근 먹어보자며 먹기 시작했는데 갈비를 먹고 나서 냉면과 비빔밥을 보니 저걸 어떻게 다 먹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열심히 먹었다.

그러나 도저히 다 먹을 수는 없었다.

천주교식으로 음식을 안 남기는 것이 신조이지만 너무 많이 시킨 실수를 만회할 수는 없었다.

남은 비빔밥과 냉면을 가지런하게 정리해놓고는 배를 두드리며 일어섰다.

계산대에 가서 양이 많다고 좀 말씀해주시지 골고루 먹는다고 다 시켰더니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어서 남겨 미안합니다라고 하였더니 종업원이 웃으시면서 냉면만 시키셨으면 사전에 양 조절을 해 드리는데 비빔밥과 함께 시키시어 둘 다 드시려는구나 하는 생각에 평소대로 양을 드렸는데 남기셔도 괜찮습니다라고 하였다.

 

의미 있는 고귀한 선물 하나 더 추가했다.

마산 교구 성지(聖地)인 진주 옥봉 성당에 들러 주모경을 바쳤다.

성인의 때가 묻은 것이 역력한 것이 상당히 오래된 성당임을 알 수 있었다.

미사 봉헌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미사 시간도 그렇고, 코로나도 아직 저러고 있어 다음으로 미루었다.

 

구경도 하고 배부르게 먹고 나니 아무 생각이 없었다.

금강산식후경이든 식후금강산경이든 얼른 집으로 가고 싶었다.

오는 길에 남강댐과 진양호를 둘러보았다.

볼거리가 많고 먹을 것이 푸짐하여 새벽의 평화방송 후원에 이어 낮에도 진주길 천 리의 고귀한 선물을 주고받은 것이 참 좋았다.

 

 

http://blog.daum.net/kimjyyhm

http://www.facebook.com/kimjyyfb

http://twitter.com/kimjyytw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화 문진  (0) 2021.10.26
본부장  (0) 2021.10.26
코로나도, 집값도  (0) 2021.10.24
내 님의 사랑은, 1974  (0) 2021.10.23
작은 그림  (0) 2021.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