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메시지이자 인격이다
[C컷] 권위도 사진도, 내려놓을 때 울림이 있다

“이런 시도가 쉽지 않았을 텐데… 신선하다.”
하루에도 수십 장씩 쏟아지는 대통령 사진 중 유독 시선을 끈 장면이 있었다. 지난 10일, 이재명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청사 내 구내식당을 찾아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다. 대통령을 중심에 두고 구내식당 직원들을 배경으로 삼는 구도가 정석이지만, 이 사진은 다르다. 사진가는 활짝 웃는 직원들의 표정에 초점을 맞췄다.
대통령 전속 사진은 대개 정형화된 구도를 따른다. 피사체의 중심은 대통령이고, 다른 인물이나 배경은 부차적인 요소로 배치된다. 군 장성의 의전 사진이 지휘 수행의 증거로 기능한다면, 대통령 사진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고도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행동과 자연스러운 연출이 어우러진 정교한 기획이 요구된다.

주 피사체를 지나치게 강조한 전속 사진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공개 활동 사진이다. 김 위원장을 화면 정중앙에 배치한 채, 군 간부나 이재민들을 병풍처럼 둘러세운 장면에는 연출을 감추려는 최소한의 시도조차 없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전속 사진이 권위만 과시할 때 그것은 기록이 아니라 선전 도구로 전락한다.

해외 사례로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전속 사진가 피터 수자(Pete Souza)의 작업이 대표적이다. 그는 ‘대통령=사진의 중심’이라는 관례를 과감히 벗어났다. 군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는 그와 악수하는 병사의 표정에 초점을 맞췄다. 대통령의 인기를 통계나 수사가 아닌 장면 하나로 설득력 있게 드러낸 순간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자주 인용되는 또 하나의 사진은 2011년 5월 1일,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작전이 진행되던 백악관 상황실에서 촬영된 장면이다. 사진 중앙에는 작전 실무 책임자인 마셜 B. 웹 미 합동특수작전사령부(JSOC) 부사령관이 앉아 있고,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은 옆에서 몸을 낮춘 채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권위를 내려놓고 팀의 일원으로서 자리한 모습은 그의 실용주의적 리더십을 보여준다.

피터 수자는 간담회 중 바닥에 누워 노는 아이를 자연스럽게 두는 장면도 놓치지 않았다. 이처럼 오바마 전 대통령은 종종 사진가의 의도 아래 프레임의 가장자리에 배치되곤 했다. 반면, 외교 무대에서는 정반대의 전략이 쓰였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와의 미일 정상회담 사진에서는 차량 안에서 다리를 꼰 채 대화를 주도하는 오바마의 모습이 미국의 외교적 우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2017년 조선일보 주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연사 자격으로 방한했을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동선은 물론 조명의 세기와 색온도까지 경호 관계자들이 사전 점검할 만큼, 그의 보여지는 모습은 ‘계산된 내려놓음’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진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2024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부터 이재명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온 전속 사진사 위성환 작가는 기존의 정형화된 구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 청사 출근길에서 수평이 살짝 기울어진 구도는 화면에 긴장감과 역동성을 부여하고,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는 공간에 초점을 맞춰 정적과 아픔을 차분히 담아냈다.
위 작가는 부 피사체에 초점을 맞추거나 프레임의 여백을 과감히 활용한다. 국민에게 보여지는 대통령의 행보를 안정적으로 담아내야 하는 전속 사진사의 역할을 고려할 때, 이러한 접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의 사진은 미학적 감각을 바탕으로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만들 만큼 시선을 붙잡는다.
전속 사진은 대통령과 사진가의 합으로 완성된다. 이미지에 무관심한 지도자와 지시대로만 움직이는 사진가가 만나면 메시지 없는 연출과 불필요한 논란만 남는다. 반면, 이미지의 파급력을 인식하는 지도자와 소신 있는 사진가가 함께할 때 사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강력한 정치적 언어가 된다.
보여주고 싶은 장면만으로 연출된 사진은 감흥이 없다. 지도자가 중심을 양보할 때 메시지는 더 멀리, 더 깊이 전달된다. 비워낼 줄 아는 사진일수록 이미지의 힘은 오히려 또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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