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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하나, 둘, 셋

by Aphraates 2018. 8. 28.

오늘은 새벽 산책을 안 나갔다.

비 내리는 거리 걷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비가 올지라도 웬만하면 나가는데 오늘은 천둥번개가 너무 요란하다.

일상적으로 볼 때 사람이 벼락 맞을 확률은 극히 적지만 그래도 나가는 것이 안 나가는 것보다는 맞을 확률이 높은 것이기 조심해야 한다.

전력계통에서 낙뢰는 쥐약이다.

전력계통을 운용하면서 일기불순 같은 자연재해는 어느 정도 관리 통제가 가능하지만 낙뢰에는 약이 없다.

설비 지중화와 성능향상, 낙뢰 관측 및 경보 시스템, 피뢰 시스템 등에 많은 투자를 하여 예전보다는 낙뢰 피해가 적지만 오늘 새벽처럼 내리치면 그를 커버하기에는 속수무책이어서 제발 조용히 지나가라는 말만 할 따름이지 어이쿠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뜨끔뜨끔함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빗물이 튀겨 들어오지 않게 앞뒤 창문을 단속하고는 낙뢰 관측을 했다.

어렸을 적에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고전적인 방법이었다.

지금은 첨단화돼 있다.

일일이 안 챙겨도 기상청이나 한국전력 같은 기관에서 전국 곳곳에 설치된 뇌우관측시스템과 중앙 처리장치를 이용하여 낙뢰를 측정하여 지도상으로 일목요연하게 표시되고, 그 정보를 공개하고 제공해주기 때문에 주먹구구식으로 낙뢰를 측정할 필요는 없다.

 

낙뢰는 구름과 구름 사이, 구름과 대지 사이에 일어나는 막대한 에너지의 방전 현상으로서 구름이나 바람 방향에 따라 이동하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번개가 딱 쳤다.

그럼 손가락을 꼽아가면서 하나, , ......, 하면서 천둥소리가 들릴 때까지 헤아린다.

어디쯤에서 낙뢰가 쳤는지 계산이 된다.

먼데서 친 것은 소리가 안 들리니 계산하기 곤란하고 가까운 곳에서 친 것은 비교적 맞게 계산이 가능하다.

헤아린 숫자(하나=1초로 간주)에 대기 중의 음속 340(m/s)를 곱하면 번개친 거리가 나온다.

번개가 쳤다 하나, , (3)으로 헤아린다 천둥소리가 들린다면 수평 또는 수직으로 3X340=1020m 떨어진 거리에서 낙뢰가 친 것이다.

동서남북 방향은 감으로 측정하면 된다.

대전의 경우는 대개가 서(西)에서 동()으로 이동하는 방향이다.

바람이 서에서 동으로 불고, 구름이 그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의미다.

 

너무 과한 기상 예보를 했다가 호된 여론의 비판을 받더니 급기야는 기상청장이 경질되었다.

오보(誤報)에 대한 책임인 것이다.

며칠 전에 기상예보에 관한 글을 쓴 적도 있지만 아직은 기술과 장비가 미흡하여 미국과 일본의 기상 정보를 많이 활용하는 한계성을 갖고 있는 현실에서 참 안타까운 일이다.

예하 조직과 조직원이 많은 국방장관과 경찰청장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져 옷을 벗어야 할지 몰라 늘 사표를 안 호주머니에 갖고 다닌다는 일화도 있지만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각설하고.

소파에 누워 동녘이 트는 가운데 하나, , 셋을 헤아리면서 내리치는 낙뢰 관측을 하노라니 사양 변전소(斜陽 變電所)에서의 신입사원 시절이 떠올랐다.

담당 업무 중에 서해안 및 청양 지역 뇌우 관측을 하고, 그를 월보로 작성하여 상급 부서로 제출하는 것이 있었다.

전력계통을 운용하는 측면에서는 중요한 일이었지만 현장에서는 번거로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규정대로 잘 했다.

낙뢰가 발생하면 일일이 수첩에 적었다.

모월모일모시에 외산(부여) 방향에서 강도 얼마의 낙뢰 몇 회 라는 식으로 비교적 상세하게 낙뢰관측을 했다.

그를 매월 말에 집계하여 월보로 작성하여 제출했다.

성실한 것이 오래 가지는 못 했다.

얼마간의 세월이 지나자 흐지부지 주먹구구식으로 됐다.

상급 부서에서 낙뢰 관측 정확도를 따지는 것도 아니고, 낙뢰칠 때 마다 일일이 적는 것도 귀찮았다.

낙뢰 관측이 아니라 생각나는 대로 대충대충 해서 보냈다.

조금 관측해 본 경험을 토대로 하여 달력을 보고는 낙뢰를 추정하여 월보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비가 요란하게 온 날은 어디에서 강한 낙뢰 몇 회, 비간 조금 온 날에는 어느 방향에서 약한 낙뢰 몇 회로 기록했다.

청천벽력이라고도 있으니 맑은 날에도 어디에서 낙뢰가 몇 번 있었다고 양념으로 끼워 넣었다.

 

정확도와 신뢰도가 땅바닥인 낙뢰관측 월보였다.

예보와 통계 문제로 기상청장과 함께 통계청장이 물러났다는 설도 있지만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낙뢰 통계는 낙뢰 예방 대처에 별 도움이 안 됐을 것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게 다가 아니다.

더 웃픈 일도 있다.

졸병이 독단적이고 편의적으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고 맘대로 낙뢰 일보(IKL)를 소설 쓰듯이 상상으로 작성한 것은 신입사원의 잔머리가 아니라 고참 선배님의 큰머리였다는 것이다.

어느 날인가 사업소 방문차 내방한 고참 선배님과 술을 한 잔 했다.

업무를 논하다가 낙뢰관측이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라고 푸념을 했다.

선배님이 우리 후배는 참 착하기도 하다면서 바로 답을 줬다.

그 월보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대충대충해서 보내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주 준수하고 이로운 조언이었다.

상사보다도 하늘같은 고참이 더 무섭던 시절이었다.

고참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던 직장 분위기에서 고참의 조언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 또한 졸병의 임무이자 도리였다.

나중에 낙뢰관측 업무가 폐지될 때까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고참 말 그대로 실천하였다.

 

오늘 낙뢰와 폭우가 요란하기는 했다.

하지만 지속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럴 줄 미리 알고 있었다.

구름이 서로 부딪히며 보유한 에너지를 낙뢰를 통하여 소진하거나 구름과 구름 사이 간격이 멀어진 상태로 바람에 밀려가니 곧 낙뢰와 폭우가 시들해진다는 것은 익히 경험한 바이다.

또 전기 관련 분야 5개 기술사(技術士)시험에서 심심치 않게 출제되는 것이 낙뢰와 피뢰 시스템인지라 그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지고 관련 지식도 그만큼 높아져 낙뢰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가 있어 야단법석 떨어봤자 얼마 못 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재난 안전 메시지가 떴다.

대전 청주 지역 호우주의보가 내려졌고, 대천 갑천(甲川) 하류 회덕과 신탄진 부근 금강 연계 지점에 홍수주의보가 내려졌으니 산사태를 조심하고 외출을 삼가나다.

날이 완전히 밝으면 산책길에 아는 사람들 마주치는 것이 싫어 산책을 안 나기지만 오늘은 특이한 날이어서 상태가 어떤지 살펴보려고 하였더니 당국에서 경고 안내를 하였으니 그 역시도 날 따라야겠다.

오늘 새벽 소란스러움에 힘입어 전국적으로는 몰라도 지역적으로는 해갈도 충분이 됐을 것 같다.

하나, , ......,

이렇게 숫자를 헤아리며 낙뢰 관측하는 것은 그만 하고, 윤동주 시인의 서시에서처럼 별 헤는 밤 같았으면 좋겠다.

차갑고 급박한 느낌이 드는 쓰리(3), (2), (1), 제로(0)의 카운트다운도 별로다.

 

그리고 목마른 갈증(渴症)이든 무서운 수마(水魔)든 적당했으면 좋겠다.

며칠 상간으로 기온이 10로 팍 떨어져 덥다 덥다 하며 늘어지던 것이 써늘하다 써늘하다 하면서 움츠려드는 것이 환경변화에 능동적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기보다는 사람이 너무 간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쑥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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