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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원복

by Aphraates 2019. 2. 7.

원복.

어느 유명한 만화가이자 대학 총장이었던 분처럼 사람 이름이 아니다.

이름하여 원대복귀(原隊復歸)의 준 말 원복(原復)이다.

전기공학의 릴레이(Relay, 계전기) 이론과 실무에서도 종종 나오는 리셋(Reset,복귀) 개념이기도 하다.

원복은 호불호의 양면성이 있는 것 같다.

하나 좋은 경우보다는 안 좋은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용수철이나 릴레이처럼 소정(所定)된 역할을 하고 나면 원래대로 복귀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사람인 경우는 안 그런 측면이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미당 선생의 원복 사례 하나를 예로 들어본다.

 

전방 사단의 연천지역 군자산 진지 작업을 하던 새까만 졸병시절이었다.

갑자기 열이 40까지 오르는 혼수상태가 됐다.

당시에 유행하여 조심하라는 교육을 받던 치사율이 높은 유행성 출혈 열로 추정되어 군 앰뷸런스를 타고 전곡 연대 의무대, 동두천 사단 병원, 덕정에 있는 105 지구 병원을 거쳐 인수봉이 보이는 창동 57 거점 병원으로 후송되어 응급 조치후 입원을 했다.

사경을 헤맸지만 만 하루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유행성 출혈 열이 아니라 점심 라면에 넣어 먹으라고 배급된 상한 계란 두 개를 홀짝 삼킨 것이 식중독을 일으킨 것이었다.

속을 비우는 위장 세척과 체온을 내리게 하는 알코올 마사지를 받고는 OO 꺄났네하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으며 깨어나 병실로 옮겨졌다.

환자는 환자인데 졸지에 나이롱환자 된 것이었다.

거동을 하면서 병실생활을 하노라니 거기가 바로 지상천국이었다.

논산 훈련소와 감악산 사단 후반기 교육을 받고 한탕가의 자대로 배치되자마자 방카 작업에 투입되었으니 최말만 부대에서 최하의 졸병으로 박박 기다가 계급이나 속박이 필요없는 병원 침대에서 옹야옹야하는 신세로서 몸이야 아프던 말든 환자로서 오래오래 남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꿀떡같았다.

그러나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희망사항이었다.

한 열흘 만에 퇴원조치가 되어 원복의 수순을 밟았다.

의정부 102 보충대, 사단 보충교육대, 연대 대기병을 거쳐 원래 자리로 그대로 원대 복귀되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원복 과정에서 조금만 눈치가 빨랐으면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 원위치로 되지는 않았을 텐데 뭘 모르고 원리원칙대로 따른 것이 결국은 미련맞은 것이 되어 후회를 하기도 했다.

그런 안타까운 경우는 그 뒤로도 있었다.

부대장 아들 영어 선생으로 관사로 출퇴근하던 좋은 기회에도 뭐 하나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부대 이동에 따라 소대원으로 원대 복귀하여 가장 모범적인 전방 군인 생활로 마무리했다.

 

진취적이고 무서운 속도로 승승장구하며 장족의 발전을 이루다가 어두운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은 실패다.

무더운 여름이나 혹독한 겨울의 긴 방학을 끝내고 거미줄이 어지럽고 풀이 무성하게 자라 을씨년스런 학교로 하는 등교하는 것은 싫다.

들뜬 기분으로 준비하고, 즐겁게 떠나서, 맘껏 즐기는 국내외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차에 몸을 실으면 피곤한 몸보다는 아쉬운 맘이 더 문제다.

오매불망이던 휴가를 나와 사제 밥을 먹으면서 여러 사람들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다가 부대 복귀하려고 열차에 몸을 싣자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군인들과 군 차량뿐으로 눈과 가슴을 혹사시키는 것은 고문이다.

미관말직에서 맴돌다가 천신만고 끝에 사모관대를 쓰고 한 자리 차지하였는데 중대 사고가 발생하여 강등되고 좌천되는 처지가 되는 것은 인생 역전의 쓰디쓴 맛이다.

타고난 허약 체질이어서 조심조심하여 어느 정도 몸을 가꾸고 만들어 놨는데 어디 한 구석이 다시 심하게 무너져 병원 신세를 지는 것은 죽기보다 더 하기 싫다.

개과천선하여 잘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면서 열심히 살고자 노력하였는데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또다시 실수를 범하여 큰집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인간 자존심마저도 허무는 악랄함이다.

희희낙락하던 연휴를 끝내고 출근하려니 호랑이 같은 상사에 입만 살아 재잘거리는 부하가 떠올라 심난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생글생글 웃으며 상쾌한 아침인사를 나누는 것은 가식이다.

 

아침 나절에 뉴스 앵커가 설 명절을 쇠고 직장으로 출근하는 모습을 소개했다.

뭔가는 미련이 남은 듯이 아쉬운 표정들이 역력하다고 했다.

굳이 언론에서 언급을 안 해도 다 아는 사실이다.

명절에 쉬지도 못 하고 일하는 사람들이나 명절이라고 해야 마땅히 갈만한 곳도 없는 사람들과 비교하여 명절에 국내외 여행을 다녀오는 것에 대하여 칭찬이나 비난을 할 것은 아닌 것 같고 공항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표정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원복이도 어쩌면 인간 의지대로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일 것이다.

자비를 청하는 수밖에 없다.

행복한 사람들은 불행한 과거로 원복하지 않게 해 주시고, 불행에 처한 사람들은 비록 마뜩치 않았지만 지금보다는 나았을 과거로 원복이라도 시켜 달라고 기도드린다.

 

반백수인 미당 선생은 원대복귀이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한 입장이다.

전전후 선수이거나 한 물 간 OB이거나 하나일 텐데 무엇이 되었든 간에 지금처럼 만으로도 복받은 것이라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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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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