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하숙생

by Aphraates 2019. 2. 9.

미당 선생 고향은 충남 청양(미당)이다.

원 고향 말고 고향이 또 둘이 있다.

2의 고향 공주와 제 3의 고향 대전이다.

청춘 시절 잠시 머물렀던 서울도 끼어줄만 하지만 빼버렸다.

안양천 옆의 수침 지역인 신정동과 문산가는 길목인 홍제동에서 겪었던 지긋지긋한 고생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어 고향이라 이름 붙이기는 싫다.

 

애증이 교차하는 공주와 대전이었다.

그를 잘 다스렸기에 근 30년을 대전에 정착하여 나름대로 안락하게 살고 있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고난의 세월이었지만 그래도 그 때 그 시절이 그립다.

칠갑산 자락의 까까머리 아이가 어른들의 의지와 자신의 꿈을 안고 객지인 공주와 대전으로 유학 나갔지만 여러모로 궁핍했다.

목구멍 풀칠하기도 바빴던 그 때의 시골 출신들 거의가 다 그랬다.

그나마도 하지 못 하여 정산으로 중학교를 다니거나 그도 못 한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눈물겨운 유학 시절은 젊어서의 고생은 사서 한다는 가르침에 충실한 측면이 없지 않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 와 생각하니 공주와 대전에서의 중고등학교 6년 세월은 파란만장했지만 그게 거친 인생을 헤처나온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하숙과 자취 생활은 사시사철이 춘궁기(春窮期) 같았다.

고난을 몸소 체험한 방황의 시절이었다.

그래서 더 인상이 깊고 정든 곳이었고, 2,3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어린 시절을 제외한 생애 태반이 대전, 공주, 청양을 잇는 선상에서였으니 감개무량할 만도 하다.

 

타향살이는 공주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중동 차부 뒤에 있는 사촌 형한테 맡겨진 하숙생이었다.

얼마 후에 큰 형수님이 조카를 데리고 밥해 주시려고 공주로 오셨다.

공주는 형수님의 친정이기도 했다.

봉황동 법원 옆 사글세방을 거쳐 중동의 도립 병원 앞 전세방에서 형수님의 보살핌을 받았다.

큰형님이 제대를 하시자 형수님이 미당으로 가시고 나서는 영명학교 올라가는 중학동에서 공주사대 형과 누나들과 함께 하숙생활을 하는 것으로 공주 시대를 마감하고 공업학교에 입학하여 대전으로 진출했다.

 

가난한 촌자(村者)의 유랑생활은 대전에서 더 심했다.

도청 뒤 선화동 충열탑 아래에서 영근이와 함께 하숙을 했다.

이어서 기홍이와의 도마동 집, 태평동 조폐공사 앞 명호네 집, 유천동 문화초등학교 가는 반듯한 길에 있던 논 가운데의 희성이네 집에서 의환이와, 문화동 신 주택에서의 군인 아저씨들과의 하숙생을 거쳐 문화동 초가집에서 봉규와 잠시 자취생활을 하다가 호남선 철로 변에 있는 부여 아줌마네 슬래브 집에서의 하숙을 끝으로 3년을 마무리했다.

 

세 보니 6년 동안 공주와 대전에서 11군데를 이사 다녔다.

한 곳에서 6개월 반 년 정도 머물렀던 폭이다.

변화하고 옮겨 다니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그렇게 자주 이사를 다닌 것은 이례적인데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좀 더 싼 곳으로 옮겨 다니다 보니 그리 된 것이다.

어른들이 생각하면 어지간히도 빨빨거리고 다닌다고 했을 것 같다.

 

H본에서 마을, 하나의 '호텔'이 되다..30년 전 하숙마을 공주의 변신이라는 로뽀 기사로 공주의 하숙집 이야기를 실었다.

그 역사의 수레바퀴를 똑똑히 보며 타고 다녔던 한 사람으로서 관심을 갖고 눈여겨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확대 지향으로가 아니라 축소 지향으로 가고 있는 공주에서 그런 것으로라도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는 것은 찬란했던 백제 문화의 후광은 이미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시어서 안타깝기도 하지만 옛 기억을 더듬게 하는 기사였다.

공주는 충청남도 중심에 위치하여 대전과 천안에 이어 세 번 째 가는 소도읍으로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백제고도(百濟古都)이자 교육도시(敎育都市)였다

그러나 지금 공주는 조용하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외적을 피하여 사방팔방으로 봉쇄된 도읍지를 찾아온 백제의 천도(遷都)가 연상되는 우울한 대목이기도 하다.

좋게 말하면 산자수려한 동네이고, 안 좋게 말하면 침체 일로를 걷고 있는 황성옛터다.

산천은 거의 의구한데 갈수록 위축되는 양상이다.

인구가 줄고 줄어 국회의원 선거구도 하나가 안 되어 부여와 청양을 합쳐 하나의 선거구가 됐다.

전국에서 학생들이 몰려 와 명문이던 공주 사대와 교대와 함께 여타 대학들이 있지만 적어도 하나 정도의 대학이 들어서 있는 여타 지방 중소도시나 별반 다르지 않다.

돈 될 만한 것들이 없어 도시로서의 자급자족 기능이 약화됐는가 하면 인근 대전, 세종, 천안에 치여 회생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는 아픔이 있다.

2의 고향이자 원 고향을 오가노라면 지나치면서 보는 정든 곳이 활력이 넘쳐나지 못 하는데 속이 편할 리가 없다.

 

데보라가 주방에서 틀어 놓고 일하며 듣는 라디오에서 새벽부터 스콧 메켄지(Scott McKenzie)의 노래 샌프란시스코 (San Francisco)가 시원하고 정겹게 들려온다.

세월이 간다 해도 그 노래처럼 아늑하고 그윽한 정기가 넘쳐흘러야 하는데 메마르고 삭막한 기운이 감도는 공주 하숙집의 얘기여서 더 맘에 와 닿는다.

 

 

 

http://blog.daum.net/kimjyyhm

http://www.facebook.com/kimjyyfb

http://twitter.com/kimjyytw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노이  (0) 2019.02.11
어부 漁夫  (0) 2019.02.10
고告  (0) 2019.02.08
원복  (0) 2019.02.07
  (0) 2019.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