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
전주(電柱)의 옛말이다.
전깃줄을 늘어트려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전력 설비인데 통신이나 철도 분야에도 있다.
전봇대라면 미당 선생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한전에 입사하여 신입 사원으로 쌍문동 연수원(현재 한일병원) 입소 때에 처음 승주를 해봤다.
실습 시간에 목재 전봇대 올라가는 훈련이 있었다.
그 당시 신입 사원은 직급별로 구분되었는데 그에 관계없이 승주 훈련을 했다.
논산 훈련소에 들어가면 군인을 만들기 위하여 맨 먼저 제식 훈련을 하는 것처럼 전력인으로서 기본 소양을 갖추기 위하여 기초 훈련을 하는 것이었다.
한 차례인가 했는데 별로 재미는 없었다.
특수부대에서 갓 제대한 터라 승주 장비를 이용하여 전봇대에 오르내리는 거야 무난했지만 그리 간단하거나 쉽게 생각할 것은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여 낙하한다거나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오면 다리 부러지고 손 결딴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 뒤로는 전봇대를 안 탔다.
수습이 끝나자 근무 환경이 바뀌었다.
직군이나 직급으로도 그렇고, 맡은 업무도 전봇대와는 거리가 있었다.
애환이 깃든 전봇대도 세월 따라 변했다.
동남아 등 열대지방에서 수입한 나무에 유침(油浸)하여 사용하던 목재 전봇대는 사라지고 그 대신에 CP 주라고 해서 콘크리트 전주가 대세였다.
CP 주는 크기도 다양하여 골고루 쓰였다.
그것으로 안 되는 높이이거나 강 하천 같은 횡단 개소에는 철탑이나 철주를 사용했다.
그런데 그도 권불십년이었다.
도심지는 물론이고 시골 산이나 들판에도 비 뿌리듯이 서 있어 안방마님 노릇을 하던 전봇대도 좋은 시절 다 지나갔다.
전력 공급이라는 막중한 역할을 마감한 채 다음 세대한테 자리를 물려주고 뒷방 마님으로 자리를 옮겨 가고 있다.
전력설비의 지중화 때문이다.
안전, 환경, 미관 차원에서 웬만한 곳은 전력설비가 지하로 들어가는 지중화 추세여서 CP 주 위상과 역할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그렇다고 전봇대를 홀대하면 곤란하다.
오늘의 우리가 있게 만든 주역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평생을 먹여 살려준 고마운 전봇대를 O친 막대처럼 여긴다면 그와 함께 흘러가는 사람도 그 신세가 될 것이다.
정중하게 모시지는 못할망정 천덕꾸러기로 취급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와 세상의 이치에 반하는 것이다.
굿바이와 함께 천천히 물러가는 전봇대가 아쉬운 미련을 달래주고 있다.
중국의 전봇대가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는 중국] 전봇대 올라가 '윗몸일으키기' 한 청년 탓에 1만 가구 정전> 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위험하고도 무모한 짓이지만 흥미롭게 봤다.
좀 야박할지 모르지만 무식한 사람이다.
죽으려면 무슨 짓을 못 하느냐는 소리를 넘어 죽으려면 혼자나 죽지 왜 여러 사람 괴롭히냐는 비난의 소리가 나올 것도 같다.
어느 정치인 말마따나 세상이 아무리 급박해도 해야 할 일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그를 구분하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는 것은 본인에게나 세상에나 결코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삼갈 정도가 아니라 절대로 금해야 할 일이다.
http://www.facebook.com/kimjyyfb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