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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깔딱 고개

by Aphraates 2021. 3. 16.

평평하고 밋밋하면 재미없다.

변화무쌍한 것을 좋아하는 모험가가 아닐지라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굴곡진 길을 일부러 찾을 것은 아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가늘 길은 고비의 연속이자 고지의 연속이니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역정인 것을 한 고지를 넘고 다시 한고비가 이어지는 여정을 누구라고 거부할 수 있겠는가.

 

벌써 10년이 되었다.

공릉동 연수원에서 퇴직 준비 교육을 받을 때다.

일과 후 저녁에 강당에서 고지전영화를 관람했다.

OB 선배들에 대한 배려인지 일반 극장에서처럼 생맥주와 팝콘도 제공하여 흥미진진하게 관람했다.

6·25 때 수십 번 빼앗고 빼앗겼다 하며 혈투를 벌여 누가 진짜 주인이고 적인지 모른다는 휴전선의 백마고지를 배경으로 한 영화였다.

며칠 후에는 텔레비전 화면을 통하여 인간의 한계와 극기의 상징으로 고지와 고비의 연속인 지구촌 최고봉 8,848m 에베레스트 등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도 시청했다.

 

퇴직해 나가면 고지와 고비를 벗으로 삼아 살라는 예고편 같았다.

상상이 야무지지만 녹녹진 않다.

처절하게 극복한 역경과 역정을 생각하면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막상 다른 형태로 극한상황이 계속된다면 유연하게 버텨내기는 힘들 것이다.

닥치면 못할 일이 없지만 그를 벗어나면 절박함이 흐미해진다.

장기간의 GOPGP 특수근무를 통하여 하루에 몇백 원 하던 생명 수당을 저축하여 몇만 원인가 소중하게 갖고 제대하면서 아주 귀한 돈이니 의미 있게 쓰겠다고 다짐하였으나 의정부에서 제대 동기들과 작별 회식을 하느라 한입에 톡 털어 넣고 허탈해하던 미당 선생 모습이 바로 그 모습이다.

 

깔딱 고개, 다음

깔딱 고개가 생각난다.

전국적으로 그렇게 명명된 고개들이 꽤 된다.

오솔길과 신작로였던 옛길에서는 흔히 보던 깔딱 고개들이다.

지금은 아무리 함령일지라도 고개 같지가 않다.

도로 공법 기술이 좋아지고, 자금이 풍부하여 훤하게 길을 낸다.

가다가 산이 막히면 터널을 뚫고, 계곡이 나타나면 육교를 놔 높고 낮음이 없는 평평한 도로를 만든다.

방자가 이끄는 나귀를 타거나 짚 새기 등에 지고 걸으며 한숨으로 넘던 아득한 서낭당 고갯길을 넘던 시절과는 다르다.

 

깔딱 고개는 힘들다.

있는 힘을 다하여 오르고 올라도 못 올라갈 수가 있다.

넘다가 넘어질 수도 있다.

백 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나무 있느냐면서 저돌적으로 대들어도 안 넘어가는 나무는 안 넘어간다.

 

깔딱 고개를 넘을 때 약간의 도움만 있으면 수월할 것이다.

뒤에서 등을 밀어주고 앞에서 손을 잡아준다거나, 갈증을 풀어주는 시원한 물을 주거나, 등짐을 대신 맡아주거나 하면 사그라들고 포기 일보 직전에도 기력을 회복하여 그 고개 한 번 고약스럽다라는 농담을 하며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인생 고비도 깔딱 고개 고지다.

웃어도 웃는 것이 아니고, 울어도 우는 것이 아니다.

빙고를 외치며 모두가 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면서 긍정적인 자세로 어려움을 거뜬히 극복하고 잘 지내는 것 같아도 사실은 즉 많은 애로사항이 있다.

하루를 사는 것이 힘겨워 피눈물이 나고 한스러움이 복받쳐 오를 때 누군가가 깔짝 도와주면 깔딱 고개도 꼴깍 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면에서는 왜 그렇게도 인색하고 야속한지 모른다.

제금나는 데 숟가락 몽뎅이 하나 못 들고나와야 했던 것을 보통으로 여기는 사람들로서는 그런 것을 상상하는 것조차도 금기사항이다.

나의 인생은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뭘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던 부모·형제들의 사랑 하나만으로도 이 세상 뭐든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처절하게 몸부림쳐 거뜬히 해낸다.

거기 누구 없느냐고 소리쳐봐야 들어주는 이 없이 서운함과 고독함과 절박함만 더할 뿐이다.

메아리 없는 그런 비통함도 다 내 것이다.

신세타령만 할 겨를이 없다.

금수저든 흙수저든 그런 고비의 연속인 것이 인생이다.

그를 극복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웃고 울면서 또 다른 깔딱 고개를 향하여 오른다.

춘풍의 훈훈함도 삭풍의 싸늘함도 다 내가 아울러야 할 바람이다.

그 흐름에 순응하면 나물 먹고 찬물 마시고 돌베개하고 누워도 만족스러워 행복하고, 순응하지 못하면 고기 먹고 뜨슨 물 마시고 포근한 베개를 해도 불만스러워 불행하다.

 

이렇게 어려울 때 우리 부모님이 계시어 조금만 도와주면 벌떡 일어날 텐데 저 멀리 가셨으니 어쩌겠는가.

왜 이다지도 배배 꼬여서 풀리지 않는 것인지 이럴 때 누군가가 옆에 서서 조금만 가르쳐주고 이끌어주면 앞길이 평탄할 텐데 거들떠보는 사람 하나 없으니 어쩌나.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선거인지라 어디선가 백기사가 나타나 몇 표만 더 얻어오면 당선이 될 것 같은데 등극하여 사람 구실을 하느냐 낙마하여 사람대접도 못 받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어 난감하니 그를 어찌해야 하는가.

 

깔딱 고개를 넘는 사람들.

어느 편이든, 어떤 형편이든 모두의 건투를 빈다.

아울러 깔딱 고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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