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에서의 날들도 점점 저물어간다.
올여름을 넘기지 않고 2.5년의 삼천포 생활이 마무리될 것 같다.
길게 보면 짧은 세월이고, 짧게 보면 긴 세월이다.
삼천포에 관한 규정도 다양하다.
먹고 사는 삶의 현장 측면으로 보면 맨발의 노년이다.
눈에서 튀는 불꽃과 함께 뛰어야 하는 타향 객지다.
그러나 인생을 관조하는 측면으로 보면 로맨스 그레이다.
꿈에 그리고 가슴이 시릴 정도의 그리움과 아름다움과 추억이 가득한 따뜻한 남해안 마을이다.
삼천포 앞바다는 물 반 고기 반이다.
옛날 말이긴 하나 고기가 그만큼 많다는 말이다.
넉넉한 표현이기도 하고 부황 끼의 허풍이기도 하다.
갈수록 고기 씨가 말라간다는 바다를 배경으로 생업에 종사하는 어부들은 그런 소리를 안 할 것이다.
반면에 낚시를 취미로 삼은 강태공들은 그런 소리를 하고도 남을 것이다.
삼천포 장날이다.
출근하고 나면 여간해서 전화를 안 하는 데보라가 전화를 했다.
무슨 일이냐고 걱정했더니 커플 봄 잠바를 사 왔는데 다른 색으로 한 벌씩 더 사려고 하니 좀 일찍 퇴근하여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기꺼이 응했다.
대신 나는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볼일 보고 오라는 조건이었다.
남편과 아내가 함께 쇼핑하는 것은 백화점이든 재래시장이든 잘 안 된다.
들었다 놨다 하는 여자와 아무거나 집어 들라고 하는 남자와는 유전자적으로 차이가 있으니 그를 억지로 꿰맞추려면 탈이 난다.
바꿔 말하면 시장바구니 들고 졸졸 마누라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사택에서 몇 분 거리인 시장으로 데보라를 픽업했다.
공영 주차장에서 마스크 때문에 입김이 서린 안경을 벗었다 썼다 하면서 시장 노점상 주변을 살펴봤다.
긴긴 겨울날의 두꺼운 옷을 벗고 하늘거리는 봄옷을 반갑게 맞이하기라도 하듯이 활력이 좀 있어 보였다.
그러나 착시 현상 같은 것이 좀 안타까웠다.
장사 한 사람에 손님 열 정도는 모여 북적거려야 하는 데 거꾸로 장사 일곱에 손님 셋 정도로 보였다.
장사와 손님이 흥정하느라 왁자지껄한 것이 아니라 장사들끼리 하품하며 담소하는 모양새였다.
상담(商談)의 시끌벅적한 시장의 본 모습과는 달랐다.
드리운 낚싯대는 많은데 고기는 적어 입질하지 않아 깊은 명상에 잠긴 것처럼 졸고 있는 강태공의 모습이 연상돼 매우 안타까웠다.
그러나 물 반 고기 반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근근함도 때가 되면 지나리니 이다.
터널도 끝은 있고,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온다.
그때와 그날이 언제일지 기약할 수 없지만 희망 사항을 놓친 않는다.
하다 보면 언젠가는 한적한 낚시터가 적막을 깨고 낚시만 드리웠다 하면 낮은 입질에 많은 고기가 낚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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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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