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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OB百態

by Aphraates 2021. 4. 9.

V.P of OB

Various Phases of Old Boy.

 

다양한 모습의 은퇴자다.

각자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다.

사회 통념상으로나 인간적으로 호불호를 따질 수는 있지만 어느 곳에 있어도 나는 나다.

고로 누구는 옳고 누구는 옳지 않다고 단언하기는 곤란하다.

 

로매스그레이, 다음

OB=Rromance Grey.

은퇴자는 노신사다.

각양각색의 형태에서 그래도 그중에 나은 모습이다.

YB만은 아니어도 좋아 보인다.

금수저의 연장 선상으로 운이 좋은 것인지, 개천에서 용이 난 식으로 젊어서 고생한 대가의 보람인지 알 수는 없지만 여유가 있어 보인다.

일부러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 아닐 텐데도 풍기는 감이 좋다.

가족과 친지와 함께 맛있는 것도 먹고, 여행도 하고, 하고 싶은 것도 하고, 베풀기도 하고, 크고 작은 애경사나 모임에도 곧잘 나타나 윤기 나는 얼굴과 품위 있는 행보로 주변의 부러움을 산다.

젊음에 이어진 노년이니 다들 그렇게 살고 싶은 로망이 있을 것이다.

또 그렇게 살아야 좋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런 로망 속에 사는지는 모른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런 것에 감이 없이 사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재벌 회장이라고 해서 부러워할 것 없고, 당신이 다리 밑의 거지라고 해서 부끄러울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다 제맛에 사는 것이라고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그리 간단하게 생각할 것은 아니다.

 

오비 백태다.

돈도 외출도 필요 없이 집안에서 빛바래고 무르팍 튀어나온 운동복 입고 뭉그적거리며 가는 세월을 낚는 방콕이 있다.

놀면 뭐 하느냐며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물불 안 가리고 나선 새마을 일꾼이 있다.

주제 파악 못 하고 눈칫밥 먹으며 훈수하는 공갈 도사가 있다.

체통이고 배알이고 딴 나라 이야기인 한량이 있다.

찬물 마시고 이 쑤시며 거드름을 피우는 양반이 있다.

건강을 강조하며 일손을 놓지 않는 심심풀이 농부가 있다.

가화만사성을 실천하는 모범 가장이자 충실한 보모가 있다.

건강때문에 조심스런 사람이 있다.

우환때문에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고민 이외는 할 고민이 없는 선택받은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미당 선생은 어디에 속할까.

그저 그렇다는 생각이다.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도 있고, 그러지 못하는 것도 있다.

만족한 것은 아니나 허덕이지도 않는다.

거기까지가 한계이거나 능력인데 더 아등바등한다 해서 될 일도 아니다.

욕심을 부려 목말라한다면 바윗덩어리라도 깨질 수 있고, 생각 없이 무너지면 한 줌 모래만도 못하게 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니 주어진 대로 기쁘고 즐겁게 하려고 하는데 그마저도 순탄하게 되는 것은 아니고 성실과 정성이 담보돼야 가능한 것이다.

 

주말 하루 휴가를 냈다.

삼천포에서 중요한 미팅을 끝내고 짐을 꾸려 대전으로 올라오는데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3일간에 할 일들의 계획은 다 구상됐으니 일단 잊었다.

순차적으로 처리하면 되는 것이어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은 아니다.

그런데 향촌 집에 와 짐을 풀고 나니 축 늘어지는 기분이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으로 대응조치에 나섰다.

무념 상태로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다음 단계로 들어갔다.

낙지보다 좀 큰 문어 한 마리 펄펄 끓는 물에 튀겨 저녁 식사를 하고는 바디 컨트롤에 들어가 따스한 물에 지지고 따끈한 장판에 눕혔다.

 

그 뒤로는 나몰랑이었다.

수면제로 사용하는 TV도 필요 없이 녹아떨어졌다.

뒤척일 때 꿔지던 꿈조차도 안 꿔졌다.

그렇게 푹 자고 일어나니 동녘이 터오는지 훤해지기 시작했다.

샛별 체조로 팔다리를 움직여 보니 몸은 가뿐했다.

역시 밥이 보약이고, 잠이 보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골골했느냐는 듯이 독서대 앞에 앉아 책장을 열었다.

이해가 되다가도 돌아서면 가물가물한 몇 가지 분야 중의 하나인 조명공학 문제를 열어 리마인드시켰다.

이해가 잘 안 되고 쉽게 잊어버리면 보고 또 보고를 연속한다는 무지막지한 전략이다.

통하든 안 통하든 그 방법 이외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면서 그리하는 것인데 능률과 비능률 문제는 다음 문제다.

 

, 심신이 회복된 것 같으니 일어서자.

떨어지기 전에 미리미리 연료 공급도 하고, 출발 기어도 넣고, 엑서레이터도 밟고, 브레이크도 점검하고, 서서히 움직여 달릴 때는 달리고 멈출 때는 멈추자.

그러면 얻는 것도 있고, 잃는 것도 있을 것이다.

다 그렇게 완급조절을 하면서 자기 몫에 따라 되는 대로 사는 거다.

금수저는 금수저대로 사는 것이고, 흙수저는 흙수저대로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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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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