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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아메리카 박 America Park

by Aphraates 2021. 5. 6.

올해의 어린이날은 주중의 낀 휴일이었다.

객지 생활하면서 곤란한 경우다.

대전에 올라가기도 그렇고, 그냥 머물기도 그렇다.

그러나 이번 휴일은 올라가지 않기로 했다.

방콕하면서 해야 할 일도 있고, 코로나 사태에서는 되도록 활동을 자제하고 많은 사람을 안 만나는 것이 좋다는 소리도 수시로 듣는 터라 쉬는 휴일 하루 삼천포에 머물기로 했다.

 

그런데 방콕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았다.

진정한 방콕이 될 수는 없었다.

새벽부터 책을 잡고 몰두하다 보니 머리도 띵 하고, 밝아오는 날씨가 어찌나 맑고 화창한지 엉덩이가 들썩였다.

맘 가는 데로 행동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에서 먼 하늘과 바다만 바라보는 것은 몸과 맘을 더 지치게 하는 것이라는 논리로 변명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좋은 핑계를 대면서 길을 나섰다.

통영(統營,충무) 별미인 굴밥 정식을 찾아 나선 것이다.

실상 굴밥 정식은 전국 어디서나 보편화되다시피되어 굳이 굴의 주산지인 통영을 찾을 일은 아니나 그래도 그게 아니었다.

굴의 본향이 다른 곳에 비하여 뭔가는 나아도 나을 것이고, 그곳에서 굴을 즐기는 것도 운치가 있을 것 같았다.

또 일부러 통영을 찾은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굴을 찾아 일부러 먼 길을 달려 통영으로 가기도 하는데 바로 옆 동네인 삼천포에서 2년 넘게 살면서 별미 굴밥 한 번 안 먹고 가면 후회가 될 것 같아 굴 철이 조금 지난 5월에 찾게 된 것이었다.

 

통영은 역시 아름다운 한려수도 해안 도시다.

그러나 평소 같으면 북적거려야 할 통영 도남 관광단지가 한산했다.

그놈의 코로나 때문이다.

오가는 사람들이 좀 있긴 했으나 마스크를 쓴 채 제한적인 움직임을 보였고, 마리나에 줄지어 서 있는 산뜻한 형형색색 요트들은 녹슨 기찻길처럼 쓸쓸해 보였다.

 

통영에서는 제일이라고 알려진 Y관에 들어갔다.

신선한 생선을 비롯하여 통영의 명품인 충무 김밥과 꿀빵은 아예 생각지도 않고 오로지 굴밥 정식 하나만을 찾아서 간 것이다.

식당도 한가했다.

어린이날 외식인 듯 아이들과 뭘 먹는 서너 테이블의 손님이 전부였다.

방역 수칙 절차를 거쳐 창가에 자리를 잡아 물어볼 것도 없이 2인분 이상이라는 굴밥 정식을 주문했다.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속전속결로 나왔다.

김치류와 해류를 비롯한 밑반찬에 굴전, 멸치회, 고등어구이, 콩나물국, 굴밥이었다.

증명사진을 찍고는 기름 동동 뜬 양념간장을 돌솥 굴밥에 넣고 썩썩 비벼서 바닥의 붙어있는 누룽지와 함께 먹으니 고소했다.

부부가 서로 더 먹으라 권유하면서 한 그릇 뚝딱하고 나니 흡족했다.

1인분에 1.7만 원이라면 점심 한 끼 식사로서는 싼 편은 아니나 명성에 어울리는 굴밥이었다.

대전 분들께 어디 가지도 못하고 이렇게 점심 식사하고 있다는 보고 내지는 약 올리는 사진을 전송하고 나서 식당에 왔다 갔다는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사들이 사진과 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열어보니 0X0으로 시작하는 번호여서 바로 닫았다.

그 번호의 전화들은 대개가 반갑지 않은 전화다.

판매 홍보 전화이거나 전화 금융사기 전화일 확률이 높아서 연결도 안 하고 끊는 것이 거의 전부인데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같은 번호로 바로 또 전화가 왔다.

싫다는데 왜 그러느냐는 짜증이 났지만 선뜻 드는 예감이 이상했다.

그 동안에는 바로 끊었는데 바로 다시 전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둘러 받았더니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다시 끊으려고 했더니 상대가 혹시 이규화 씨 전화가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이()가 아니고 김()인데 댁은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미당초등학교 8회 출신 박윤자라고 했다.

전혀 기억이 안 나는 이름이었다.

초등학교 동창생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혹시 후배나 선배인가 하고 생각하다 보니 내가 8회인지 6회인지 헷갈렸다.

하나 미당과 도림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봐 이상한 사람과 이상한 전화는 아닌 것 같아 이야기를 이어갔다.

상대가 어찌하다 보니 낯선 전화번호가 있어서 해본 것이라며 통화를 계속했다.

자기는 도림에서 살던 박윤자라면서 그 동네 친구들과 미당 친구들을 어렴풋이 이야기하는데 점점 신뢰가 가고 확실한 동창생이었다.

동창생도 이렇게 만난 것이 신기하다면서 고향 이야기를 하니 꿈꾸는 것 같다면서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미국에서 산 지 40년이 됐다는데 한국 본토 발음이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했더니 수시로 한국에 들어갔다 온다면서 고향의 말을 잊을 수가 있느냐는 식으로 말하여 기특하기도 했다.

 

통영 마리나, D&A
통영 Y관, D&A

 

통영 윤이상 음악관, D&A

삼천포에 도착해서는 바로 다른 동창생들과 연결을 시켜주고, 카톡에도 초청하여 정겨운 만남을 주선해줬다.

사람 사는 재미를 다시 한번 느끼는 것 같아 참 좋았다.

이민 가서 사는 재외교포를 보면 독하다는 생각과 함께 참 안 됐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 어려운 길에 나서서 잘 살고 있다니 고마운 일이었다.

화려한 할리우드 무대를 떠나 귀국해있는지 모르나 화녀의 주연과 미나리의 조연인 배우 윤여정 씨가 연상되기도 했다.

 

인연(因緣)과 귀소본능(歸巢本能)을 숙명이라 여기는 것은 여전하다.

호사수구(狐死首丘)도 그렇다.

낳아주신 부모님과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잊지 않고, 친구를 그리워하고 추억에 잠기는 것은 당연하다.

칠순의 노인들이 어린이날에 열 살의 어린이가 되어 천진난만하게 얘기를 나누는 것은 참 아름다운 그림이자 누구한테라도 권하고 싶은 것이다.

 

오늘은 아메리카 박과 함께 동창생들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강낭콩 밀가루 개떡 먹으며 누런 광목 빤스 입고 뛰어놀던 칠갑산과 백마강을 회상하면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라는 성경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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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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