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참 좋은 동네다.
고향이라서가 아니라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귀한 곳이다.
충청도인.
참 좋은 사람들이다.
충청 태생이라서가 아니라 순박하고, 착하고, 고진 이다.
무골호인이다보니 시기와 질투, 공격과 견제, 무시와 비하의 대상이었다.
호시탐탐 넘봤다.
고구려도 내려오고, 신라도 올라왔다.
궁예와 견훤도 한바탕 벌였다.
남과 북의 격전장이기도 했다.
한반도 한민족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외세까지 덩달아 눈독을 들이고 군침을 삼켰다.
대륙에서도 내려왔고, 섬에서도 올라왔고, 별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먼 곳에서도 발을 들여놓았다.
과거만 그런 것이 아니다.
현재 진행 형이다.
충청, 영 기분 안 좋다.
주객전도(主客顚倒)여서다.
양반 고을이 전장(戰場)으로 되고, 양반이 수난을 당한다.
다른 데서 들어와 전쟁한다.
무주공산으로 알고 격렬하게 쟁취 전을 벌인다.
충청, 외부에 많이도 시달렸다.
그만큼이나 단련도 되고, 심지도 굳어졌다.
당하며 산 것에 분노하고 의기소침하기도 한다.
충청, 좋은 소리도 못 듣는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음흉하며, 말끔하지 못하고 두리뭉실하단다.
호평한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고, 악평한다면 시달림을 못 견뎌 피하는 것이다.
충청, 만만하게 보고 넘본다.
백마강의 나룻배는 타는 자가 임자인가.
이 자도 타보고, 저 자도 타보고 한다.
다급하면 중원이니 충청 대망론이니 하면서 호객을 한다.
의도된 권모술수이자 사익추구다.
사탕발림을 하다가 배제하고 뒤통수 친다.
자존감이 상한다.
뭣도 밟으면 꿈틀한다.
외세를 본능적으로 느끼며 은근과 끈기로 버틴다.
OOO에 XXX를 이용하려는 것은 어림도 없다며 강하게 반발한다.
그러나 잘 안 된다.
나중에 보면 눈을 부릅뜨던 결기는 사라지고 흐지부지된다.
좋은 게 좋다고 흐물흐물해진다.
양반 체면과 체통이 말씀이 아니다.
되게 기분 나쁘다.
호락호락 넘어가진 않는다.
열 번 아니라 백 번을 찍어도 안 된다.
회유와 이용은 결연하게 거부한다.
패권이 별로 맘에 안 들어 하면서도 전략상 은밀하고 교묘하게 다가오지만 쉽게 넘어가진 않는다.
싫으면 배척해야 한다.
생각해주는 것도, 좋게 봐주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데 이다.
이득을 보고자 하는 외부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내부에서도 부화뇌동하여 자중지란이 이는 경우가 있다.
영 못마땅하다.
같은 충청이다.
줏대 없이 이리 붙었다가 저리 붙었다 하며 누워서 침을 뱉는다면 양반 고을 충절의 고장은 무엇이 되느냐며 눈 흘긴다.
그래도 막무가내다.
걸핏하면 충청과 친하자고 다가온다.
목전의 이익에 연연하는 것이 뻔한데 눈과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자기 소신이라고 포장하지만 조선 말의 이(李)가네 대신 그룹처럼 보인다.
손가락질받아도 할 말이 없을 텐데 더 승해진다.
모모네에서 충청 캐스팅 보팅 역할론을 들고나왔다.
슬쩍 운을 떼고 동태를 살피는 것이다.
별로 호응이 없다.
갖다 붙일 것을 붙이라면서 싸늘했다.
그러자 말이 그렇다면서 슬며시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모모네에서 백제를 들고나왔다.
백제라면 누가 봐도 공주와 부여, 청양과 논산이다.
그런데 여긴 쏙 빼고 싸잡아서 백제라고 한다.
앙꼬없는 찐빵 논쟁을 벌인다.
이럴 때는 푸대접보다 더 한 무대접이 상기된다.
또 그 거냐 하는 긴 한숨이 나온다.
당사자로서 뭐라고 호되게 한마디 하고 싶다.
그러나 양반이 참고, 양반이 지켜야 한다.
남의 것을 놓고 갑론을박에 좌충우돌하는 것도 다 나라와 백성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면 속 편하다.
대인으로서의 양반 체면을 중시하고 그 심지대로 꼿꼿한 사고와 행동을 하면 그게 안 지고 이기는 것이다.
충청이여, 봉기하라.
그리 선동하는 게 아니다.
충청이여, 과거로 흔들리는 갈대가 되지 말고 미래로 생각하는 로댕이 되자고 외치는 것이다.
미당 선생은 군대 생활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충청의 설움을 겪었다.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인 평가다.
군에서는 장병 분포가 OO 30%, XX 30%, 충청 20%, 기타 20% 정도였는데 양다리 걸칠 수 없는 중간지대의 충청도가 당하는 편이었다.
사회에서는 특정 지역들이 득세를 했다.
충청도는 양념이나 인사치레로 조금 쳐줬다.
돈도 빽도 실력이라는 공식이 성립됐다.
충청도 1등이 다른 데 10등하고 경쟁하는 구도였다.
피해의식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그런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고 했다.
충청의 한계를 느꼈다.
충청을 이용하고, 손가락질하고, 무시하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그러나 그를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강하게 튀지는 않는다.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라고 고집을 부리지도 않는다.
숙명이라 여기며 넘어간다.
충청은 충청임을 자부한다.
단점이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가끔 농담으로 우린 뭐에 뭐라고 자조적으로 말을 하면서도 있는 그대로인 충청을 자랑하며 사랑하는 것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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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