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좋아.
넘기고, 넘기고.
물이든 술이든 너도 한 잔, 나도 한 잔.
걸리는 것이 많은 세상이지만 너와 내가 이렇게 환하게 웃으면서 시름을 잊으니 이래서 사는 맛이 난다는 것이 아니더냐.
일부러 화기애애한 자리를 만들며 돈독한 정을 나누려 하지는 않을지라도 그 뭔가가 있어서 그저 무덤덤한 일상으로 반갑고 즐거운 만남이어야 하는데 작으나마 균열이 일고 그를 남긴 채로 잘 가라는 인사를 하는 게 용 께름칙하다.
로미오와 줄리엣 가문의 반목도 아니다.
물레방앗간에서 몰래 한 남녀상열지사도 아니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사니 어쩔 수 없다며 밀어붙이는 전장도 아니다.
영겁에서 오다가다 옷깃을 스친 작은 인연도 아니다.
하나라도 더 먹기 위하여 밀고 당기기 할 것도 아니다.
CIA나 KGB에서 전설적인 007을 빌려와야 하는 중대사안도 아니다.
너 잘났니 나 못났다고 하면서 등을 질 것도 아니다.
그것도 코로나 여파인가......,
전대미문의 역병으로 인하여 많은 것이 변하였지만 그래봤자 들어가는데 발열 체크와 안심번호 한 번 찍는 것 이외는 큰 불편이 없는 일상이라 볼 수도 있는데 전에 느끼지 못하던 기류가 흘러 분위기가 묘했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다른 거 생각할 것이 많은데 괜히 침소봉대하거나 축소지향으로 문제를 키우지 말고 다 그런 거 아니냐며 그냥 넘기기에는 지나온 세월이 미안하다.
버스를 탈까, 택시를 탈까 망설일 것이 없었다.
일단은 걷기로 하였다.
구수한 갈비탕에 곁들인 소맥 폭탄 세 잔이 좋았다.
오랜만에 서대전 광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아파트와 빌딩으로 둘러싸인 것이 좀 불만이긴 하나 좋았다.
겨울이지만 봄 날씨 같지는 않았으니 춥지는 않았다.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여고생 정도나 되는 아이들이 나이 든 영감님이 편 노포에서 또 뽑기를 하면서 까르르거리는 게 예뻤다.
마스크로 입을 가렸다 내렸다 하면서 가쁜 숨과 함께 건강달리기하는 반바지 차림의 중년 사내가 보기 싫지는 않았지만 그런 수소는 가깝고 공기 맑은 보문산에 가서 할 것이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줄이 달린 풍선을 들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이를 앞세우고 천천히 걸어가면서 담소를 나누는 젊은 부부가 아름다웠다.
저편에서는 무슨 버스킹이라도 하려는 듯이 악기를 조립하고 있었다.
지나치는 차 소리와 수시로 울리는 경적이 건전하고 안전한 교통문화가 정착되려면 한참 더 있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대전 지하철역 입구에 이르렀다.
지금은 커다란 게를 파는 집으로 변하였지만 그때 그 시절에 “미워도 다시 한번”이 쓸쓸하게 울려 퍼지던 2편 동시에 상영하는 삼류 극장이던 서대전 극장 그 자리가 눈에 들어와 한참을 바라보았다.
1960년대 말이나 참 세월이 많이 가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 감정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이 대견스러웠다.
죽 이렇게만 나가도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 봤지만 그거야 인력으로 불가능한 일이니 더 미련을 둘 것은 아닌 듯싶었다.
차비 5원 때문에 충렬탑 아래 하숙집에서 문화동 학교까지 뛰어다니던 그때를 생각하니 감개무량했다.
서대전 오거리-용두동-수침교-용문동-탄방동 공군 기교단(☆)-갈마동 육군 통신학교(☆)-둔산동 육군 3관구 사령부(☆☆)인 현재의 향촌 아파트까지는 2시간 정도 걸리는 먼 거리였지만 지금은 지하철로 20분도 안 걸린다.
빈자리가 나도 안지 않고 난간대를 붙잡고 서서 지나치는 기차 바퀴 소리만 들리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 깜깜한 노선과 4개 역을 지나치노라니 잠시지만 여러 생각이 교차하였다.
기류가 좀 이상했다.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바꾸면 된다.
안 바뀌면 이해와 타협과 양보를 하면서 참으면 된다.
건강해야 해.
잘 살아야 해.
행복해야 해.
그런 노랫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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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