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일 날의 미당 장날 길 같았다.
이른 아침을 먹고 동무들과 벌터 마을 앞 냇가에서 놀다 보면 동네와 냇물 사이에 있는 신작로에 많은 사라 사람들이 지나간다.
동무는 머슴애들로 동기 동창인 영식과 영근, 한 해 선배인 영성과 정래, 한 해 후배인 태용과 민태 정도가 떠오른다.
그 이상은 한참 위의 형들이고, 그 이하는 한참 아래의 동생들이어서 노는 데는 끼워주질 않았다.
신작로를 지나 아래로 가는 사람들은 윗동네 칠갑산 고을 사람들이다.
윗동네는 안 도림과 바깥 도림, 북실, 삼경재, 돌말, 사천, 샛터이고 가끔 같은 면이지만 미당 생활권 밖인 골미와 화산도 끼워줬다.
긴 두루마기와 갓을 쓴 할아버지, 손에 작은 보따리를 든 할머니, 흰색 잠방이 차림으로 달구지를 끌고 가거나 당꼬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저씨, 자기 몸보다도 큰 짐을 머리에 이고 양손을 휘두르며 씩씩하게 걸어가는 아주머니, 하얗고 검은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양산을 쓰고 가는 처녀, 약초 바구니 같은 바랑을 메고 가는 청년, 어미 소를 따라가는 송아지처럼 장난치고 웃으면서 엄마 뒤를 졸졸 따라가는 작은 아이와 학생......, 많은 사람의 행렬이지만 번잡하지 않게 띄엄띄엄 줄지어 가는 풍경은 굉일 날의 미당 장날에 동네 아이들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정산, 청남, 적곡(장평), 은산 장과 함께 닷새 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마당 장날에 볼 수 있는 모습이자 그를 바라보면 노는 아이들도 장날인 줄 알고 덩달아 즐거워하는 것이다.
누구네 엄마가 장에 가시든 간에 엿이나 풀빵 같은 맛있는 것을 사 오시어 아이들을 불러 모아 조금씩 주는 즐거움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에는 도심지 한복판에서 미당 장날의 그 모습이 다른 모양으로 재현되는 듯한 것을 보고 재미있어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가장 편안하지만 좀 남루해 보이는 도시에 잘 안 어울릴 것 같은 옷차림으로 저녁 산책하러 나갔다.
아파트 단지 후문을 통하여 대덕대로 나가 갤러리아 백화점 앞 노상의 대리석 의자에 앉아 저녁 도심지 풍경과 함께했다.
중고등학생이나 됨직한 아이들에서부터 애들은 집에 가라고 할 것 같은 정숙한 청춘들에 개밥에 도토리처럼 낀 늙수그레한 어른들까지 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백화점 정문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지 연시 휴대전화를 바라보고 통화와 메시지를 날리는 모습도 보였지만 대부분은 총총걸음이나 느린 걸음으로 물 밀리듯이 하면서 백화점 앞 동네 청춘 광장으로 가는 것이다.
아이들도 각양각색이었다.
발랄하고 깜찍하여 손에 넣고 싶어 보이는 아이들, 겉옷을 입었는지 속옷만 입고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보기 민망하여 고개가 돌려지는 아이들, 온몸을 칭칭 감은 아이들에 아랫배와 등 사이로 문신이 훤히 보일 정도로 홀라당 벗은 아이들, 사방팔방에서 우려 오는 음악과 이상한 소리에 맞춰 괴성을 지르거나 무엇이 그리 초조하고 기다려지는지 줄담배를 피워물고 있는 이마빡에 v도 안 마른 듯한 여자아이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심한 욕으로 시작하여 끝을 내는 우락부락하게 생간 남자아이들, 카페 안에서 앉아 밖을 바라보며 은은하게 차를 마시는 여자에 맥주병을 들고 마셔가면서 안을 기웃거리는 남자, 전단지를 나눠주며 한번 와보시라고 소리 지르는 호객꾼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명함을 씨앗 뿌리듯이 하는 배달꾼에, 지나가자고 빵빵거리는 차에 질서유지를 하라고 불어대는 호루라기 소리에 말 그대로 왁작지껄에 야단법석이다.
거기에다가 한 술 얻어먹으려는 사람처럼 가는 곳마다 기웃거리며 안을 들여다보거나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듯한 세상에 가장 할 일없어 보이는 장기판 훈수꾼을 자임하는 듯해 보이는 사람 미당 선생도 가세했으니 과히 북적거리는 장날 풍경이다.
청춘 광장은 참으로 아름답고 역동적인 마당이다.
지금은 닫은 지 오래되어 그 흔적만 조금 남았지만 그때 그 시절 만남의 광장인 마당 장날의 연장선상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좋은 것이라면 기려야 한다.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다소간의 문제도 있을 테지만 굉일 날의 미당 장날 같은 풍경은 남겨져야 한다.
어제 없는 오늘이 있을 수 없고, 오늘이 없는 내일이 없듯이 소중하게 여길 것은 간직해야지 안 그러면 영혼이 없는 것이다.
동심(童心)을 동심(同心)으로 함께한 장날이 좋았다.
미당 장날의 후예인 대전 장날이든, 대전 장날의 전신인 미당 장날이든 아무래도 좋으니 인연의 끈이 이어졌으면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과 많은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혼재해서 난잡하게 돌아가는 것 같지만 부서지거나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일정한 룰이 있고, 그들을 지키기에 나날이 번성하고 잘 나가는 장날 풍경이라는 것도 공유했으면 한다.
http://www.facebook.com/kimjyyfb
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