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만 한 아우 없다.
장남과 막내는 다르다는 말과도 통한다.
자주 듣고, 종종 하는 소리다.
잘 새겨들어야 한다.
아우를 폄하하고 형을 두둔하는 것이 아니다.
형이 먼저 태어나고, 잘 났다고 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가족을 생각하고 형제간의 우애를 생각하면 아무리 똘똘한 동생도 똘똘하지 못한 형을 따라가지 못하고, 아무리 무식하고 못난 형일지라도 유식한 잘난 동생보다는 생각이 깊고 우애가 깊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한 말이다.
그 말이 변함없고 한결같이 죽 이어져 내려오는 것은 그게 맞는 말이고, 사람은 그래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 인륜을 벗어나면 뭔가.
패륜이다.
패륜아는 사람도 아니라고 하면 너무 지나치다.
인면수심의 끼가 있다는 정도로 비토하는 것은 괜찮을 거다.
모모가 미당 선생을 호출한다.
동생을 보면 형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비운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비통한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다.
순수하고 약한 우리의 자화상일 수도 있으니 거기에 사족을 달 건 없다.
인륜은 천륜이라 했다.
죽을죄를 짓고 손가락질을 받는 흉악범일지라도 어버이에게는 결코 그럴 리가 없는 자식일 뿐이다.
그런데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귀여워한다고 비웃고 비난하면 그도 부모·자식 간의 천륜을 어기는 것이다.
내 형이나 동생이 어려운 처지가 되면 기름통을 메고 불섶으로 뛰어드는 것이 당연하지 무모하고도 천박한 사랑이라고 수군거리면 형제자매간의 천륜을 어기는 것이다.
세상없이 훌륭한 언사와 행동을 한다 해도 동생은 형을 죽었다 깨나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다.
현실로 보이는 것도 그렇지만 타고난 인격과 세상에 대한 인식도 대동소이할 것이다.
충주와 청주와 함께 충청도의 본향이라고 할 수 있는 “저기 충청도유”로 통하는 느리고 느린 서산 갯마을에서 그 이웃 동네인 예당 저수지 옆의 “의좋은 형제 길”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콩쥐와 팥쥐 관계도 아닌 것 같다.
이복형제지간도 아닌 것 같다.
그런데 형은 왜 그렇고, 동생은 왜 그런지 의문이다.
한 배에서 나왔어도 다른 것이 형제자매이지만 그런 형제의 그런 부조화는 이해하기 어렵다.
형은 나는 억울하다고 대성통곡을 했는데 동생은 그 대척점으로 가 큰일을 하겠다며 동분서주한다.
천륜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했다.
동생은 여러 가지 이상한 발언과 행보를 한 바 있다.
텔레비전 화면에 동생이 나오면 눈 버린다고 채널을 돌리고, 라디오 방송에 나오면 귀 버린다고 라디오를 끈다는 소리를 여러 사람한테서 들었다.
물론 칭찬하고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나서서 박수치기 곤란한지 샤이 동생으로 남는다.
또 한 건 터졌다.
임대주택에 사는 서민을 린치하는 부적절한 발언도 나와 시끄럽다.
일본에서 그랬다던가......,
전쟁 후유증으로 나타난 심신 장애인들은 후세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어떻게 했다는 인간 말종적인 건이 연상된다.
발언이 문제가 되자 바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하겠다며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고 해(변)명했다고 한다.
그건 잘한 일이다.
그런데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높아지는 것을 막진 못할 것 같다.
그런 움직임은 동생 같은 특정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다 조심해야 할 일이다.
열심히 일하고 좋게 이야기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도와주시는 셈 치고 제발 얼굴 좀 보여주지 마세요, 말씀 좀 하지 말아주세요” 라고 하면서 피하는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좀 자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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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