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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집어넣고

by Aphraates 2023. 4. 9.

부활대축일 미사 후에 국수 잔치 아가페가 있었다.

율리안나 구역장님이 정성들여 준비하셨다는 수육과 김치를 안주로 하여 대전의 원 막걸리와 전라도 순천의 황칠이 막걸리 몇 잔 하니 어제 저녁에 밤이슬 맞으면 벌였던 소맥폭탄 기운이 되살아나는 듯이 숙취 해장이 되는 기분이었다.

멸치 국수를 한 그릇 때리고 살며시 나왔다.

설거지라도 봉사해야 하는데 그럴 형편이 못됐다.

남원 내려갈 준비를 해야 할 것들이 있어 시간도 그렇고, 편하던 속에서 전쟁이 벌어졌는지 편칠 안 했다.

따스한 햇볕은 받으며 갈마동 웨딩 거리를 터덕터덕 걸어가는데 앞의 고급 외제 승용차 문을 열어 놓고 뭔가 싣는 것 같았다.

검은 제복을 입은 두 여인이 차 안으로 짐을 밀어 넣는지 제법 다급하고 큰소리로 집어넣고를 연발하였다.

비싼 차 격에 안 어울리게 무슨 짐을 싣기에 저러는가 하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은은한 연백색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한테 발과 드레스 자락을 안쪽으로 집어넣으라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재미있었다.

(?)을 다 실었는지 차는 떠나가고 두 여인은 손을 털어가며 웨딩샵 쪽으로 걸어갔다.

짐이 크고 복잡하면 좀 큰 트럭을 부를 것이지 왜 작은 차에 큰 짐을 억지로 밀어 넣으며 동네 소란스럽게 소리치느냐면서 웃었더니 촬영장이나 예식장으로 신부를 보낼 때면 종종 있는 일이라며 자기들도 웃었다.

이론상으로는 아름다운 백년가약이지만 진행되는 절차와 단계에서는 그렇게 현실적인 문제들이 첩첩산중인 것이다.

 

갈마동 본당 신부님이 소개하신 대전 주교님 부활 축하 메시지가 바로 맘에 와 닿았다.

자비를 받고, 은총을 받고, 축복을 받았으면 그를 나누면서 그 안에 살도록 노력해야지 받은 것이 자기의 전유물인양 옭아매고 베풀 줄 모르면 신뢰를 잃은 것이자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신이라는 말씀이었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들도 돌아가 이웃에게 똑같이 하라는 말씀과 같은 맥락이었다.

 

챙길 것이 많고 맘이 다급하여 잘 안 들어가지는 웨딩드레스이 신부와 턱시도 차림의 신랑 양반한테 한 마디 전해주고 싶다.

어디 사는 뉘인지 모르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되듯이 아니, 머리가 훌러덩 벗겨지도록 행복하게 살아주십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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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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