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맴맴

by Aphraates 2023. 7. 16.

맴맴 윤석중시/박태준곡/1920/나무위키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 댁에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할머니가 돌떡 받아 머리에 이고

꼬불꼬불 산골길로 오실 때까지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아버지가 옷감 떠서 나귀에 싣고

딸랑딸랑 고개 넘어 오실 때까지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새벽부터 남원 현장 상황을 알리는 메시지가 연시 올라왔다.

여전히 일기 불량 지역의 면모를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호우 상황이 그리 심각하진 않은 듯했다.

그렇다고 일상적으로 임할 순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느긋하게 사태 추이를 관망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렇다.

좌불안석이었다.

정성스럽게 미사 참례를 하고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천천히 집을 떠날 정도로 여유를 부릴 순 없었다.

날씨에 따라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니 공사 현장 위수지역인 남원 도통동 집에 머물기로 하고 서둘러 내려왔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로 시작하는 1968년도에 선포되었다 1993년에 폐기된 국민교육헌장의 이념을 실천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임을 만방에 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이 몸에 배서 위기의식을 느끼며 필요하다 싶을 때 조금 불거져 나온 것이다.

 

그런데 날씨는 청개구리였다.

일찌감치 예보됐던 비는 고사하고 해가 방긋 웃으며 열기를 토해냈다.

날씨가 왜 이렇게 찰나를 다투는 조변석개인지 이상했으나 미리 겁먹고 서둘러 내려온 것이 억울하다던가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미리미리 준비하는 유비무환 시스템에 길든 세대들의 기본적인 태도로서 우직하고 미련 맞지만 그게 약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방곡곡 온통 물바다가 되어 야단법석이다.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라서 견뎌내야 한다면서도 어쩌면 인간 재해일지도 모르니 피해를 최소한으로 할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리고 맴맴이다.

어린 나를 혼자 남겨두고 어찌하여 아버지는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너마을에 가신 것인지 슬프고 두렵다.

누가 있어 이 고통과 괴로움을 달래줄 것인지 모르겠다며 긴 한숨을 내쉴 사람도 적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안타까움도 남는다.

 

 

<http://kimjyyhm.tistory.com> <http://blog.daum.net/kimjyyhm>

<http://www.facebook.com/kimjyyfb> <http://twitter.com/kimjyytwt>

(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U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이도령은 가라  (0) 2023.07.18
꼬이고 넘어지는 것은  (0) 2023.07.17
고속도는 막히고, 국도는 넘치고  (0) 2023.07.15
바란 사람이나, 버린 사람이나, 놀란 사람이나  (0) 2023.07.14
말 장난에 말 폭탄  (0) 2023.07.13